[최화열의 한라시론] ‘육지것’ 시점 제주
입력 : 2025. 10. 02(목)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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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제주에 발을 디딘 지 오래되지 않은 사람을 흔히 '육지것'이라 부른다. 이 단어에는 섬 밖에서 온 사람에 대한 경계와 호기심, 때로는 약간의 배타심이 섞여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제주의 매력에 빠져 새로운 정착민이 되어 가는 과정을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육지의 시선으로 제주를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이 쌓이면서, 이제는 제주 속에서 육지것으로 남는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처음 제주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섬의 리듬'이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의 시간은 늘 빠르고 촘촘하게 채워지지만, 제주에서는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크게 호흡하는 듯하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바다가 거칠게 요동쳐도, 섬 사람들은 그 자연을 억누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내는 방식으로 적응해 왔다. 육지것인 나에게는 이 태도가 낯설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또한 제주는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 공간이다. 관광객의 시선에는 돌담길과 오름, 해안도로가 먼저 들어오지만, 생활인의 눈에는 마을회관, 오일장, 읍내 식당이 먼저 보인다. 육지것으로 살아가다 보면 두 얼굴을 동시에 마주해야 한다. 주말이면 관광객의 물결이 넘치지만, 평일 저녁에는 이웃 주민과 안부를 나누며 밭일 이야기, 어획량 이야기를 듣는다. 이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야말로 제주에서 육지것이 겪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것은 단순히 외지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섬에 어떻게 스며드는가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소비만 하고 떠나는 사람과, 제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관계를 쌓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나 역시 지금 시점에서는 '잠시 머무는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어언 지난 12년동안 제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역 사람들과 밥상을 나누며, 학문적·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면서 점차 '함께 살아가는 육지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곤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육지것으로서의 한계는 늘 있었다. 언어와 억양, 생활 방식에서 육지것이 완전히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다. 감귤 농사나 해녀 문화처럼 세대를 이어온 생업의 맥락에 깊이 닿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리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외부의 눈'으로 제주의 장단점을 바라볼 때, 제주가 가진 가치를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와 관광 과밀 문제 속에서도 제주는 지속가능한 섬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육지것의 시선은 때때로 그 방향을 짚어내는 거울이 된다.
결국 육지것 시점에서의 제주는 이중적이다. 낯설음과 친근함, 외부성과 내부성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러나 이 긴장 속에서 제주는 더욱 풍부해지고, 육지것은 조금씩 제주의 사람이 되어 간다. 바람과 돌과 바다가 빚어낸 이 섬은, 육지것이든 토박이든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가?" <최화열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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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주는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 공간이다. 관광객의 시선에는 돌담길과 오름, 해안도로가 먼저 들어오지만, 생활인의 눈에는 마을회관, 오일장, 읍내 식당이 먼저 보인다. 육지것으로 살아가다 보면 두 얼굴을 동시에 마주해야 한다. 주말이면 관광객의 물결이 넘치지만, 평일 저녁에는 이웃 주민과 안부를 나누며 밭일 이야기, 어획량 이야기를 듣는다. 이 간극을 좁히는 과정이야말로 제주에서 육지것이 겪는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것은 단순히 외지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섬에 어떻게 스며드는가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일시적으로 머무르며 소비만 하고 떠나는 사람과, 제주 공동체의 일원으로 관계를 쌓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나 역시 지금 시점에서는 '잠시 머무는 이방인'에 불과했지만, 어언 지난 12년동안 제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역 사람들과 밥상을 나누며, 학문적·사회적 활동을 이어가면서 점차 '함께 살아가는 육지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끼곤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육지것으로서의 한계는 늘 있었다. 언어와 억양, 생활 방식에서 육지것이 완전히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다. 감귤 농사나 해녀 문화처럼 세대를 이어온 생업의 맥락에 깊이 닿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리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외부의 눈'으로 제주의 장단점을 바라볼 때, 제주가 가진 가치를 더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와 관광 과밀 문제 속에서도 제주는 지속가능한 섬의 모델을 모색하고 있다. 육지것의 시선은 때때로 그 방향을 짚어내는 거울이 된다.
결국 육지것 시점에서의 제주는 이중적이다. 낯설음과 친근함, 외부성과 내부성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러나 이 긴장 속에서 제주는 더욱 풍부해지고, 육지것은 조금씩 제주의 사람이 되어 간다. 바람과 돌과 바다가 빚어낸 이 섬은, 육지것이든 토박이든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곳에서 어떤 삶을 살아낼 것인가?" <최화열 평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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