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하루 한 잔이 어때서?
입력 : 2025. 09. 24(수) 02:30수정 : 2025. 09. 24(수) 08:29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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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진료실에서는 나와는 달리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인물군을 만난다. 그분들의 인생을 잠깐이나마 알고 이해하게 되는 일이 무척 재미있기 때문에, 그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형태의 병원에서 일해볼 수 있었던 것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나도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 한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설명하느라 진료 시간을 한참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촉박해 더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한 채 그분은 재진 날짜를 잡고 돌아갔다. 재진 날에 나타난 그분은 지난번과 똑같은 옷차림,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로 마치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똑같은 자기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더 물을 필요도 없이 그분은 본인의 증세를 잘 설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엉뚱할 정도로 기억력을 많이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본래 가지고 있던 지능도 높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치매인 걸 들키지 않기도 한다. 그분의 경우 남편과는 오래전에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었는데, 성인인 자녀들은 어머니를 가끔 볼 때마다 유별난 성격이 나이가 들며 좀 더 유별나고 괴팍해졌다고 생각할 뿐,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지 기능 검사에서도 약간의 이상이 발견됐는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도 치매 초기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보다는 "그리 나쁘지 않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치매임을 인정했어도, 인정하지 않았어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그분이 계속 술을 마셨다는 점이다. 매일 밤 마시는 와인 한 잔을 끊으라 하면 고작 의사 따위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며 코웃음을 치거나, "겨우 와인 한 잔이 뭐가 어때서? 이게 왜 안되는지 의학적으로 설명을 해보라"며 따지거나, 아니면 예약을 잊고 오지 않기 일쑤였다. 누가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본인이 술을 사다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 그분이 오랜만에 나타났다. 이번엔 가족들에 이끌려 왔다. 불과 한두 해 사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치매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술을 못 끊는 환자들이 이분 말고도 많다. 술은 젊은 나이에도 물론 해롭지만 나이가 들 수록 대사는 느려지고 이미 뇌세포는 약해져 있어 아주 적은 양도 몹시 해롭다. 비록 아직까지 치매에 뚜렷한 치료가 없다고는 하나, 금주, 건강한 식생활, 운동, 건전한 사회생활만으로도 악화를 늦출 수 있다. 치매가 왔다 해도 남들이 치매임을 쉽게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초기라면 그대로 오래 행복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유전은 어쩔 수 없다지만, 술은 끊으면 될 일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좋은 습관만으로도 치매뿐 아니라 많은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히 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소영 하버드대학교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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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엉뚱할 정도로 기억력을 많이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본래 가지고 있던 지능도 높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치매인 걸 들키지 않기도 한다. 그분의 경우 남편과는 오래전에 사별한 후 혼자 살고 있었는데, 성인인 자녀들은 어머니를 가끔 볼 때마다 유별난 성격이 나이가 들며 좀 더 유별나고 괴팍해졌다고 생각할 뿐,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지 기능 검사에서도 약간의 이상이 발견됐는데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도 치매 초기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보다는 "그리 나쁘지 않네요"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치매임을 인정했어도, 인정하지 않았어도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그분이 계속 술을 마셨다는 점이다. 매일 밤 마시는 와인 한 잔을 끊으라 하면 고작 의사 따위가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며 코웃음을 치거나, "겨우 와인 한 잔이 뭐가 어때서? 이게 왜 안되는지 의학적으로 설명을 해보라"며 따지거나, 아니면 예약을 잊고 오지 않기 일쑤였다. 누가 같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니, 본인이 술을 사다 마시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얼마 전 그분이 오랜만에 나타났다. 이번엔 가족들에 이끌려 왔다. 불과 한두 해 사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치매가 급격히 악화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술을 못 끊는 환자들이 이분 말고도 많다. 술은 젊은 나이에도 물론 해롭지만 나이가 들 수록 대사는 느려지고 이미 뇌세포는 약해져 있어 아주 적은 양도 몹시 해롭다. 비록 아직까지 치매에 뚜렷한 치료가 없다고는 하나, 금주, 건강한 식생활, 운동, 건전한 사회생활만으로도 악화를 늦출 수 있다. 치매가 왔다 해도 남들이 치매임을 쉽게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초기라면 그대로 오래 행복하게 지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유전은 어쩔 수 없다지만, 술은 끊으면 될 일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좋은 습관만으로도 치매뿐 아니라 많은 질환을 예방하고 건강히 살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소영 하버드대학교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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