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철의 목요담론] 붓끝에서 찾는 고요는 마음의 수양이다
입력 : 2025. 10. 16(목) 01: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한라일보] 오늘날 정보의 홍수는 우리의 정신을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이 혼란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기수양'의 방편으로 서예를 찾고 있다. 붓 한 자루와 먹, 그리고 한 장의 종이만 있으면 모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서예는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를 쓰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동양의 오랜 철학을 몸으로 익히면서 내면의 평화를 찾아가는 진지한 여정이다.

서예 수련의 첫걸음은 무엇보다 지극한 집중이다. 붓끝에 먹물을 묻히고 화선지에 첫 획을 그으려는 찰나, 마음은 오직 붓과 종이, 그리고 자신의 고요한 숨결에만 몰입된다. 이러한 몰입의 과정은 흩어진 정신을 한곳에 모으는 힘을 길러준다.

이는 공자가 강조했던 '정(正)'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올바른 획을 긋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엄격한 자기 훈련이 되는 것이다. 특히 전통서예는 필획 하나하나에 기운을 담아내야 하므로, 불안한 마음으로는 안정된 획을, 서두르는 마음으로는 여유로운 글씨를 쓸 수 없다. 결국 서예는 붓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듬고 닦아나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통 '꽉 채워져' 있다. 시각적 정보와 소리, 온갖 할 일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서예는 정반대로 '비움'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노자가 강조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정신이 서예의 여백(餘白)에 담겨 있다. 진정한 서예가는 종이 위에 글씨를 채우기보다 어디를 비울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처럼 여백을 남기는 행위는 우리의 마음속에 쌓인 잡념과 불안을 비워내는 연습과 같다. 적절한 여백은 글씨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오랜 수련의 시간을 거치면, 서예는 더 이상 고통스러운 훈련이 아니라 마음에 진정한 해방감을 안겨준다. 이는 장자가 말한 소요유(逍遙遊)의 경지이자, 심재(心齋)를 통해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붓은 더 이상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작가의 감정과 정신을 지면에 그대로 표출하는 몸의 연장선이 된다. 이때의 글씨는 정형화된 미감을 넘어선 생동감과 자유로움을 한껏 내뿜는다.

결국 서예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훌륭한 방패이자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바른 자세와 마음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고, 노자의 철학처럼 비움을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내며, 장자의 정신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통합적 수양 과정이다.

붓끝으로 완성된 한 폭의 글씨는 그날의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얼굴이 된다. 그래서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을 넘어, 삶의 매 순간을 진정성 있게 살아가는 자기 성찰의 예술인 것이다. <양상철융합서예술가·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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