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 관덕, 만덕, 그리고 안덕
입력 : 2015. 07. 02(목) 00:00
관덕정(觀德亭)은 제주 건축의 상징적인 건물이면서 보물 제322호로 지정될 정도로, 탐라국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문화중심지로서의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관덕'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은 것이다(射者所以觀盛德也)'에서 유래됐다. 이 건물은 1448년(세종 30)에 처음 지어졌으며, 당시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치는 동안 과거 시험, 군사검열, 진상되는 군마의 점검, 각종 집회 등의 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덕이 부족하면 부정한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나랏일을 위해선 문무를 겸비한 덕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강조한 곳이 관덕정이다. 관덕정과 제주목관아는 제주 문화의 영혼이 숨 쉬는 곳으로, 지금도 원형을 찾기 위한 복원 정비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만덕(金萬德)은 유년기의 고난과 가난을 극복하고, 지금의 산지천 부근에서 객주집을 운영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는다. 이를 계기로 김만덕은 살신성인을 발휘한다. 1792년(정조 16)부터 시작된 흉년으로 제주도민들이 굶주려 죽어갈 때, 재산 1천금을 내놓아 육지부로부터 양식을 공급받아 도민들에게 나누어 주게 된다. 이 일로 해서 정조는 만덕의 공을 높이 치하하였으며, 훗날 제주에 유배왔던 추사 김정희도 만덕의 행실에 감동받아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글을 써 양손 김종수에게 주었다.

의녀반수 김만덕이 보여준 겸양과 배려, 역경을 물리치고 자신의 처지를 물리친 도전정신, 자신의 재산을 지역에 환원한 솔선수범적인 기업가 정신 등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던져주는 의미가 상당하다. 지난 5월 제주시 건입동에 개관한 김만덕 기념관은 바로 만덕의 은혜로운 빛을 세상에 널리 알려,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안덕계곡(安德溪谷)은 천연기념물 제377호로 지정된 곳으로, 창고천의 일부 구간이다.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낀 지 며칠 후에 근처 군산이 생겨났으며, 이 때 계곡물이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치안치덕(治安治德)'한 곳이라 하여 '안덕계곡'이라 이름이 불리게 되었다.

1990년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안덕계곡은 빼어난 절경을 만끽하려는 수만 명의 탐방객들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이 일대에는 선사시대부터 주거지로 삼았을 정도로 용천수가 풍부하고, 1767년(영조 43)에 임관주는 안덕계곡의 비경을 기록한 마애석각을 남겨 놓기도 했다. 한 때 암벽균열, 생활하수 유입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최근에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등 자연치유형 생태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오는 7월 7일에 도내 국공립 박물관 공동으로 개최되는 창고천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안덕계곡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신비로움보다는 상처받은 자연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 창고천이 간직한 여러 풍광과 마을자원들을 지키려면, 낯선 사람들보다는 토박이들의 발길이 우선이어야 한다. 한 때 수난받았던 관덕정 일대가 제주의 핵심적인 문화아이콘으로 자리잡고, 김만덕 정신이 제주 사람들의 정체성을 심어준 것처럼, 안덕계곡의 옛 명성을 되찾는 것이야 말로 제주 자연의 가치를 더 한층 소중히 여기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완병 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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