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설날의 의미와 가족관계 회복
입력 : 2012. 02. 09(목) 00:00
가가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인식을 보면 그 사람의 경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맞이하는 순간들이 모여 일상을 이루며, 그 일상들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가 맞이하는 순간들은 나무의 나이테와도 같이 삶의 족적으로 남아 경륜을 이루게 된다.
내가 맞이했던 설날, 그 하루의 느낌만으로도 나의 삶의 괘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 어릴 적에 맞이하였던 설날은 최고의 날이었다. 일상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잔칫날이며, 새 옷을 입고 새 양말과 새 신발을 신을 수 있게 해주는 선택받은 날이었다. 나이를 더하면서 맞이하는 설날은 세배 돈을 받아 기쁜 날, 덕담을 듣는 날, 고마운 분을 찾아뵐 수 있는 날, 뵙고 싶어도 뵐 수 없어 더더욱 그리운 날 등등 매해 맞이했던 설날이지만 다양한 의미로 나의 상황과 처지를 대변하여 왔다.
가족이나 친족 중심으로 지내던 설날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사회생활의 연장선에서 맞이하게 된다. 혈연이나 이웃중심으로 하였던 새해 인사도 새로운 관계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다. 결혼 후에는 본가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관계까지도 살펴야 한다. 설날 하루로 부족하여 그 다음날까지 찾아다녀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찾아다닐 곳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넓은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설날을 맞이하는 가장 큰 기쁨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설날이라 하여 누구에게나 마냥 기쁜 날도 아니다. 설날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시리고 아픈 사람들도 많다. 가장 큰 아픔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설날의 의미는 삶의 변화처럼 많은 세월을 담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설날에 대한 의미가 나이와 비례하여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날에 대한 의미 축소가 삶에 대한 의미 축소로 이어지는 것 같아 설날 하루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맞이하고 싶다.
지난 설날에 매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자녀들과 가졌던 피상적인 대화와는 달리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인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멘토와 멘티가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매우 진지한 시간이었다. 자식이기에 더 많이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이 부담을 느낄 것 같아 지금껏 못했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전해줄 요량으로 일상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꺼낼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내게 보여준 진지한 표정에서 나의 이야기가 일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과 새로운 신뢰를 안겨 주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다 자란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관계의 회복이 나를 기쁘게 하였다.
가족은 혈연관계에서 출발하지만 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새로운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강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을 것을 이룰 수 없게도 한다.
가족과의 새로운 관계 회복, 온전한 관계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를 이루는 출발선이다.
<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가족이나 친족 중심으로 지내던 설날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사회생활의 연장선에서 맞이하게 된다. 혈연이나 이웃중심으로 하였던 새해 인사도 새로운 관계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다. 결혼 후에는 본가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관계까지도 살펴야 한다. 설날 하루로 부족하여 그 다음날까지 찾아다녀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찾아다닐 곳이 많다는 것은 그 만큼 넓은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설날을 맞이하는 가장 큰 기쁨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자녀를 맞이하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설날이라 하여 누구에게나 마냥 기쁜 날도 아니다. 설날이기에 더더욱 마음이 시리고 아픈 사람들도 많다. 가장 큰 아픔은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설날의 의미는 삶의 변화처럼 많은 세월을 담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설날에 대한 의미가 나이와 비례하여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날에 대한 의미 축소가 삶에 대한 의미 축소로 이어지는 것 같아 설날 하루에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맞이하고 싶다.
지난 설날에 매우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자녀들과 가졌던 피상적인 대화와는 달리 그들이 살아가야 할 인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멘토와 멘티가 주고받는 이야기처럼 매우 진지한 시간이었다. 자식이기에 더 많이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이 부담을 느낄 것 같아 지금껏 못했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전해줄 요량으로 일상을 기록했던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꺼낼 수 있었다. 이야기하는 동안 내게 보여준 진지한 표정에서 나의 이야기가 일방적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과 새로운 신뢰를 안겨 주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다 자란 아이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가족관계의 회복이 나를 기쁘게 하였다.
가족은 혈연관계에서 출발하지만 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새로운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강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많을 것을 이룰 수 없게도 한다.
가족과의 새로운 관계 회복, 온전한 관계는 건강한 가족,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를 이루는 출발선이다.
<김태윤 제주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