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103)한림읍 월림리
입력 : 2025. 12. 19(금) 02: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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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도전으로 언제나 활기찬 마을

[한라일보] 부지런한 부자들의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원래 이름은 음부리(音富里)다. 부자들의 노랫소리. 마을 이름에 어떤 염원을 담았던 조상들의 마음이 아련하다. 204㏊나 되는 기름진 옥토에 근면 성실을 가장 큰 자산으로 가지고 있었으니 부촌으로 일컬어졌던 것.
제주의 대표적인 분지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마을 범위 내에 오름이 하나도 없지만 주변 마을에 있는 느지리오름을 시작으로 시계방향으로 밝은오름, 마중오름, 저지오름, 마오름, 널개오름이 높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니 완만하게 지세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풍토적인 요인을 기반으로 산북지역에서 감귤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감귤과수원으로 둘러쳐진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슬로건에는 '감귤향'이 들어가 있다. 설촌의 역사가 아주 구체적인 전설로 내려오는 마을이다. 마을 어르신들의 설명에 의하면 약 280년 전, 아랫마을 금능리에 살던 고혜한이라는 사람이 어느 해 가뭄이 심하게 들어 온갖 곡식이 말라죽고 식량은 떨어지자 처자식이 굶는 것을 보다 못해 중산간으로 올라가 사냥이라도 해서 끼니를 삼으려고 떠났다. 그러나 짐승을 잡지 못하고 맥없이 집으로 향하다가 음부리라고 하는 큰 못에 이르러 목을 축인 후 물가에서 잠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깨어나 보니 각종 들짐승들이 물가에 와서 물을 마시고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내려가 집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올라와 음부리물 아래쪽에 활집(나무를 엮어서 임시 거주할 수 있도록 만든 집)을 짓고 사냥을 하면서 살았다. 잡은 짐승들을 팔아서 모은 돈으로 마소를 사서 방목해 키우고, 우거진 숲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큰 부자가 됐다고 한다. 800평 가까이 되던 움부리못 주변에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령이 500년 넘는 팽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마을이 월림리라고 불리게 된 것은 1956년 한림면이 읍으로 승격할 때 한경면을 분리하면서 남북을 이어주는 신작로를 중심으로 동쪽은 상명리 하동, 서쪽은 저지리 북동을 통합해 한림읍 월림리가 된 것이다.
마을 이름에 숲이 들어간 것은 8만평에 달하는 '봉곶물곳'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마을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이 봉곶물곶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소들을 방목해서 키우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곶자왈 속에 소들을 집어넣으면 암반지대로 이뤄진 특성 때문에 물 고인 곳이 많아 소들이 물을 마시고 풀을 뜯을 수 있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목축문화였던 것이다. 너무 신기해 필자 또한 그러한 봉곶물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변성한 이장에게 월림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젊어마씀!" 그 누구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활달한 역동성을 마을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라고 하는 용어는 마을 밖에서 통용되는 용어지, 월림리에서는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 마을의 역사가 숲과 암반지대를 개척해 이룩한 치열한 도전 과정이기에 그러한 유전자가 아직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흐르게 된다는 당당한 확신. 청년 정신이 박동 치는 마을이라는 점을 애써서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마을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며 극복과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림읍과 한경면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직선거리로 가까운 주변에 다양한 관광자원이 펼쳐져 있다. 교통 여건이 편리한 강점을 보여주는 일화가 월림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 성수기에 물거리못 장자에 앉아 관광버스들이 월림사거리로 얼마나 지나가는지 숫자를 세었다고 한다. 오전에만 250대가 지나갔다는 것. 월림사거리라고 하는 교통환경이 위치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했다. 흔한 표현으로 '목 좋은 곳'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관광객들이나 탐방객들을 유인할 콘텐츠만 있으면 주변 관광지들과 동반 상승할 수 있는 위치적 토대가 마련돼 있다. 잠재력 강한 월림리다. <시각예술가>
세월의 빛
<수채화 79㎝×35㎝>
초겨울 눈부신 햇살이 마을 중심을 향하는 길에 내리쬐고 있다. 길가에 풀들은 말라있지만 가로수로 보이는 나무들은 초록의 짙은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길가의 집을 통해 최소한 두 세대의 변화가 한 화면에 들어왔다. 슬레이트 지붕은 초가집이었던 시절에 지붕 개량으로 우선 변화를 모색했을 것이다. 그래도 돌담은 큰 변화를 겪지 않았고. 마을 안길을 넓히는 작업 과정에서 집은 도로와 바짝 붙게 되었으리라. 자동차가 상용화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스팔트길로 변모를 하고 도시기능에 가까운 배수시설까지 겸비한 길로 현대적 도로망에 편입됐다는 것은 도농복합지역 정도의 발전적 위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 집은 낮아졌다. 도로가 높아지니 상대적으로 옛 모습은 낮아지는 순응의 모습이다. 감내해야 하는 발전의 숙명을 그리려고 한 것이다. 탈색된 붉은 지붕을 통해 시간과 빛의 만남이 성사됐다. 평범한 일상을 흠모하듯이 아무 관심도 둘 것 같지 않은 농촌마을 길가의 집을 통해 이 마을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게 되는 의미도 있다. 세상에 어떤 것도 저 눈부신 햇살 아래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빛보다 빠른 것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저러한 햇빛들이 변화시키는 소박한 사람들의 변천사를 발견하게 된다. 회화적인 관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명암과 그림자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무관심들을 향해 평범함이 주는 찬란한 메시지. 앞으로 이 풍경은 또한 어떻게 변해갈까?
반짝이는 감귤밭
<수채화 79㎝×35㎝>
멀리 저지오름이 보이는 감귤밭. 오름의 능선은 위치를 식별하게 하는 놀라운 장치이기도 하다. 서쪽으로 해가 지려고 하는 상황. 길가와 인접한 돌담에 큰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감귤나무 잎들이 보유하고 있는 광택에 태양광선이 부서지니 물가의 윤슬보다 품위 있게 반짝인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던 감귤나무가 얼마나 부지런하게 광합성작용을 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게 돼 그린 것이다. 그냥 편안함을 주는 구도 속에서 시간성이 부여하는 빛의 논리를 그리는 행위는 월림리가 보유하고 있는 감귤마을의 자긍심과도 맞닿아 있다. 평범한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작업이기에 그림으로 등장해 달라지는 존재감 또한 의미가 있다. 오른쪽 큰 나무는 이미 낙엽이 떨어질 정도로 누렇게 변했지만 감귤나무는 상록이다. 묘한 대비효과를 그 햇살과 버무려서 시간성을 담당하게 했다. 겨울이 오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빛을 반사하는 본질적 물상의 의무는 유지된다. 돌담에 부딪혀서 반사된 빛이나 감귤나뭇잎에 부닥쳐서 반사된 빛이나 빛을 대하는 태도는 동일하다. 문제는 감귤나무의 숱한 잎들이 그 윤이 나는 잎사귀에서 반사하는 빛들은 그 자체로 신비로움이 깃들어 있다. 감귤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을에서 감귤나무가 보유한 빛의 성찬을 그리려 하는 것이다. 산과 나무와 돌. 아주 단순한 만남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자연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터전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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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성한 이장 |
마을 이름에 숲이 들어간 것은 8만평에 달하는 '봉곶물곳'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마을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을 어르신들로부터 이 봉곶물곶이라고 하는 곶자왈이 소들을 방목해서 키우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곶자왈 속에 소들을 집어넣으면 암반지대로 이뤄진 특성 때문에 물 고인 곳이 많아 소들이 물을 마시고 풀을 뜯을 수 있어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목축문화였던 것이다. 너무 신기해 필자 또한 그러한 봉곶물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변성한 이장에게 월림리의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대뜸 이렇게 답했다. "젊어마씀!" 그 누구도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활달한 역동성을 마을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령화 사회라고 하는 용어는 마을 밖에서 통용되는 용어지, 월림리에서는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 마을의 역사가 숲과 암반지대를 개척해 이룩한 치열한 도전 과정이기에 그러한 유전자가 아직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흐르게 된다는 당당한 확신. 청년 정신이 박동 치는 마을이라는 점을 애써서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마을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며 극복과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림읍과 한경면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직선거리로 가까운 주변에 다양한 관광자원이 펼쳐져 있다. 교통 여건이 편리한 강점을 보여주는 일화가 월림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관광 성수기에 물거리못 장자에 앉아 관광버스들이 월림사거리로 얼마나 지나가는지 숫자를 세었다고 한다. 오전에만 250대가 지나갔다는 것. 월림사거리라고 하는 교통환경이 위치적으로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했다. 흔한 표현으로 '목 좋은 곳'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관광객들이나 탐방객들을 유인할 콘텐츠만 있으면 주변 관광지들과 동반 상승할 수 있는 위치적 토대가 마련돼 있다. 잠재력 강한 월림리다. <시각예술가>
세월의 빛
<수채화 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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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감귤밭
<수채화 7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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