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자연 발광 11세
입력 : 2024. 03. 15(금) 00:00수정 : 2024. 03. 16(토) 08:58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한라일보]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큰 조카는 작년 초부터 한국사에 관심을 부쩍 가지더니 지난달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응시했다. 조카는 학교도 가지 않는 휴일에 아빠와 한 살 어린 동생 손을 잡고 90분여의 시험을 무사히 치러냈고 가족 내 세 명의 응시자 중 가장 높은 급수를 받았다. 나는 어리게만 생각했던 조카의 성취가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한가득의 칭찬을 건넨 뒤 '꿈이 뭐냐'고 물었고 조카는 열성을 다한 한국사와 무관한 스튜어디스가 꿈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비행기가 좋아서. '그렇다면 한국사는?'이라는 우문이 내 입에서 말릴 새도 없이 나왔는데 조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것도 좋아.' 이후 그 말이 꽤 오랜 시간 나에게 남아 맴돌고 있다. '그것도 좋아'. 자신만의 더듬이로 좋아하는 일을 향해 눈을 반짝이고 마음을 다하는 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태연한 호기심으로 제약을 두지 않는 법을 어쩌면 언젠가의 나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나 또한 분명하고 태연했던, 자유롭게 스스로를 움직였던 때가 있었다.

김다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제목만 듣고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장르가 '미스터리'냐고 물으면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알쏭달쏭한 비밀이 알록달록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장르로 설명하자면 오히려 SF에 가깝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학교와 학원을 정신없이 오가야 하는 11살 동춘이가 훗날을 위해 페르시아어를 배우게 되고 우연히 발견한 막걸리는 동춘에게 말을 걸어온다. 심지어 모스 부호로. 그런데 그렇게 알아낸 번호의 정체는 로또 당첨 번호라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다. 마치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동춘이의 머리와 마음속처럼.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모두가 정답 풀이를 당연시하는 세상에 던져진 무용한 탐험 지도와도 같은 영화다. 어느 길을 가야 할지는 걸음을 뗀 자가 선택할 수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는 길을 나선 이의 마음속에서 결정된다.

귀여운 영화의 포스터와 알쏭달쏭한 영화의 제목과는 다르게 터질 듯 꾸려진 선물꾸러미처럼 영화의 러닝 타임 90분을 꽉 채우는 영화다. 한국의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실을 담아내며 시작한 영화는 일견 사회드라마의 외피를 쓴 성장 영화처럼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블랙 코미디와 뮤지컬을 넘나드는 재기를 발휘한다. 결국에는 SF 드라마의 상쾌하고 묵직한 결말까지 안겨주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러닝 타임 내내 스스로 발효하는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장점은 동춘이를 비롯한 모든 꿈꾸는 이들에게 호기심은 천국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순간들에 있다. 한국사를 좋아하고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나의 조카에게도 무디고 굳어진 나에게도 언제든 마음의 속살을 힘껏 주물러 스스로를 키워갈 용기가 함께 하기를, 타인의 조명 없이도 더 멀리를 조망할 맑은 눈이 여전하기를 바라본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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