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버티고 살라는 바퀴, 안목 일깨우는 지렁이
곽정식 작가의 '충(?)선생'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5. 14(금) 00:00
한자에 벌레충 들어간 21종
곤충 세계에 작지만 큰 지혜

책장을 펼치면 가장 먼저 이런 소개말이 보인다. "한자 이름에 벌레 '충(?)'자가 들어간 생물체 스물한 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곤충의 생태를 다룬 글들을 묶었다고 여기겠지만 그 이상의 사연이 담겼다. 기업윤리 업무 등을 수행하며 35년을 기업에 근무했고 '생존과 자존' 등을 펴낸 곽정식 작가의 '충선생'이다.

곽 작가는 곤충들을 "동료 생명체"라고 불렀다. 그는 말한다. 인류는 그동안 정복과 개발, 구충과 박멸, 생산성 향상 등을 내세우며 동료 생명체와 자연에 대해 마치 타고난 우월성이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행동했다고. 인간만의 역사를 써왔던 우리는 이제 생태계의 동반자이자 보호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면서 동서양의 문화를 넘나들며 벌레들을 불러냈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 있는 동양인의 관찰과 묘사, 그 속에 숨어 있는 은유와 해학을 살폈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21종의 생물체는 잠자리, 매미, 꿀벌, 나비, 귀뚜라미, 반딧불, 쇠똥구리, 사마귀, 땅강아지, 방아깨비, 개미, 거미, 지네, 모기, 파리, 바퀴, 메뚜기, 개구리, 두꺼비, 지렁이, 뱀이다. 이들 곤충의 세계엔 작지만 큰 지혜가 있다. 저자는 어느 것 하나 차별하지 않고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바퀴는 우리가 사랑 대신 혐오를 보내는 대표적인 곤충이지만 곽 작가는 강점을 읽는다. 학자들은 최근 무너진 건물의 시멘트 벽돌 잔해를 비집고 생존자를 찾아내는 로봇을 개발하는 데 바퀴를 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3억500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질긴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 바퀴는 인간도 생존력을 높이려면 우선 몸을 낮게 하고 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빈하고 천해도 살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살아야 한다. 어쨌든 살아야 한다. 내일을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버티고 살다 보면 바뀐다."

땅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이 없어 죽어가는 지렁이를 통해선 국가도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백성이 상하고 국가마저 망할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안목이 없는 지도자는 '맹도(盲導)'이다. 그러한 지도자를 따를 수 밖에 없는 무리나 백성은 '맹도(盲徒)'가 되고 만다." 자연경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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