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란의 문화광장] 경쟁보다 공감이 필요한 시대
입력 : 2025. 10. 28(화) 02: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며칠 전, 한 언론을 통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한국 생활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단 한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17세의 나이에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찬란한 조명 뒤에서 끝없는 경쟁과 압박 속에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정치와 경제 권력의 불필요한 관심, '천재'라는 말이 만들어낸 과도한 기대와 압박, 죽고 싶을 정도였다는 절망의 고백은 단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든 지나친 경쟁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음악은 본래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회복시키는 언어다. 그러나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지옥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예술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사회의 왜곡된 구조를 보여준다.

한때 경쟁은 사회의 발전을 이끌던 동력이었다. 그러나 '이겨야만 가치 있다'는 규칙이 사람의 존엄과 관계를 해치는 순간,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이 아니라 소진의 원인이 된다. 애덤 스미스조차도 시장의 작동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 것'과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도덕적 감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감이 없는 경쟁은 결국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나는 그 답을 예술이 가르치는 협력과 공감, 조율의 방식에서 찾고자 한다.

좋은 연주는 결과보다 과정에서 빛난다. 지휘자, 연주자, 무대 뒤 스태프, 그리고 관객의 호흡이 맞아야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완성된다.

한 선율이 다른 선율을 덮지 않고, 강약과 쉼표가 어우러질 때 곡의 깊이가 생기듯, 사회도 서로의 공간을 남겨줄 때 두터워진다. 공감은 경쟁의 속도를 늦추는 장애물이 아니라, 서열 중심의 경쟁을 성장 중심의 경쟁으로 바꾸는 힘이다.

임윤찬이 스승 손민수를 '길잡이이자 구원자'로 표현한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과잉 경쟁의 한복판에서 아이 한 명을 지켜내는 것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가능성을 믿고 다시 시도할 용기를 북돋는 한 사람의 어른이다.

학교의 합주 수업, 공연장의 사전 해설, 지역 예술가의 멘토링 같은 작은 시도들이 공감의 언어를 일상 속에 스며들게 한다.

제주는 이러한 변화를 실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수눌음'의 정신과 공동체의 기억은 오늘의 예술 교육과 문화 행정이 되살려야 할 자산이다. 지역 공연장과 학교, 축제가 공감의 가치를 운영의 중심에 둘 때, 우리는 경쟁을 없애지 않고도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 경쟁으로 바꿀 수 있다.

서로의 소리를 덮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합주, 쉼표가 곡의 리듬을 완성시키는 법, 실패를 다음 무대의 성장으로 삼는 지혜. 그 깊이 속에서 아이들은 덜 불행해지고, 예술은 더 인간적이 되며, 제주의 공동체는 서로의 삶을 함께 연주하게 될 것이다. <김미란 문화예술학 박사·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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