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없어서도, 보여서도 안되는…] (6)농촌 3중고
"일손부족 웃돈 거래 성행…‘을질’에 속수무책"
외국인 근로자 ‘빌려쓰기’ ‘돌려쓰기’ 암묵적 묵인
강다혜 기자 dhkang@ihalla.com입력 : 2022. 08. 09(화) 00:00
외국인 근로자들이 도내 한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라일보]"속된 말로 배에 기름 차면 도망가는거라" 3대 째 서귀포시 대정읍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허 모(60)씨는 10여 년 전부터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정식 고용해 왔다. 그는 "3~4년 전까지는 퇴직금을 수령하면 떠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작년부터는 월급만 받으면 야반 도주하는 통해 골치가 아프다"고 푸념했다.

|사람 없는데… 태업·이탈·임금상승에 농업인 '삼중고'

외국인들의 이탈 행렬은 어촌뿐 아니라 농촌을 포함한 1차 산업 전반에서 이어지고 있다. 허 씨를 포함한 농업인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무단 이탈과 태업, 불어난 임금 등 소위 '3중고'를 앓고 있다고 토로했다.

허 씨는 "평상시처럼 일을 하다가 돌연 야반 도주하는 것보다 더 골치가 아픈 건 '태업' 행위"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몇 년 새 고용한 외국인들 중 일부가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장 변경을 요구해 왔다. 이어 요구를 거절 당하자 고의적으로 작업을 방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사업장 변경이나 월급 인상이 어렵다고 말하니 옥수수 가지를 꺾어 버리는 행동부터 시작해 이제 막 수확하려는 작물에 볼 일을 봐버리거나, 갓 씨앗을 심은 흙 밭을 즈려 밟고 다니더라"며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인권단체나 고용센터에 신고하겠다며 핸드폰(녹음기)을 들더라. 이게 '을 질'이 아니면 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금인상 요구 거부하면 작업 방해하고 태업 빈번"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서명을 해줬다. 안 해줬으면 야반 도주 했을 것"이라며 "10여 년 간 재배하던 작물을 갈아 엎고 쉽고 비용이 덜 드는 작물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특히 농업인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불어난 임금이다. 농업인들은 의식주 제공에 보험금 납입, 퇴직금까지 지급하고 있는데 최저임금제 적용이 되면서 상당한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질적인 인력 공급 역할을 하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한 웃돈 거래도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내 한 인력지원센터 관계자는 "물가 상승으로 농자재 가격 역시 매해 상승하고 있는 반면 도매 시장에서 결정되는 농산물 가격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이에 농산물 생산에 투입하는 필수 자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해야 하는데, 농업인 입장에서 비용을 조절·절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인건비, 즉 노동 임금 비용일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임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니 농업인들의 처지가 역대급으로 어려워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또 "무단 이탈하거나 태업 행위를 보이는 외국인에게 적용할 제재 수단도 필요하다"며 "단 태업 행위에 대해선 입장 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공공기관 등 제3자의 개입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당초 입국 시 농업에 전업할 것이라는 확약과 함께 자격 요건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 없으니까?…"농촌공동체 미덕" 아래 묵인

합법적 경로로는 필요한 인력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농촌에선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불법 고용 외에도 여러 편법 혹은 탈법 행위가 암묵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가 합법 외국인들의 무단 이탈과 미등록 외국인 양산을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우선 농축산업 외국인 근로자가 계약서에 적시된 고용주의 농장이 아닌 다른 농장에 보내져서 일하는 경우가 꽤 빈번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내 곳곳 다수의 농업인 및 관계 기관과 외국인 근로자 등의 말을 들어 보면, 인근 지역의 비슷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농장들이 각각의 명의로 배정받은 외국인 근로자를 공동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농축산업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를 건설업·제조업 등 타 업종에 보내서 일을 하도록 시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 사설 인력소개소 또는 개인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내 사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논밭에서는(농촌에서는) 사람(노동력) '빌려 주기' 또는 '돌려 쓰기'라고 부른다"며 "오래된 관행인데, 시골에선 불법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으레 이뤄지던 일이니 묵인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합법보다 불법 근로자의 수요가 많은 이유에 대해 또다른 농업인은 "외국인 근로자 고용 제도의 절차 등이 까다로운 것도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밭을 임대하는 문화도 여전히 남아있어서 정식 고용을 꺼리는 농가들도 있다"며 "농업경영체를 등록하지 않은 농가들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 정식 고용이 어렵기 때문에 미등록 외국인을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농촌 일손부족-외국인 불법고용-무단이탈 악순환

지난 2010년 입국한 뒤 현재 도내 한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외국인 근로자 B(40·중국)씨는 "서귀포 한 농가에 배정됐을 때 다른 농장에서 일했었다"며 "지금은 고정된 곳에서만 일하고 있지만 최근에도 비일비재하다. 한국 말이나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고용주가 가자는 곳으로 가서 일하는 것인데, 그게 힘들어서 이탈하는 외국인 지인들도 꽤 많다"고 설명했다.

1차산업 업계에서 노동력의 불법 공급이 만연한 것은 그에 대한 관리 감독이 허술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도내 이주민센터 관계자는 근로자들은 열악한 근로 조건과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조차 보장해주려 하지 않는 근무처를 떠나서 조금이라도 조건이 나은 곳으로 옮기려는 것이고, 고용주들은 어렵게 고용한 근로자들을 놓치고 싶지 않는 것"이라며 "농촌 공동체 내 품앗이·수눌음 문화가 미덕이라는 관행도 있고, 담당기관이 관리 감독 책임을 장기간 방기해 오기도 했다. 그 사이 전문 불법 브로커까지 생겨난 상황까지 오게 됐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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