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의 백록담] 성급과 신속
입력 : 2026. 09. 14(월) 01:00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한라일보]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가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을 시도하다 로컬라이저와 충돌해 179명이 사망한 사고의 공식 명칭이다. 참사 명칭에 무안공항을 넣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특정 지역명이 들어가면 지역 혐오와 함께 유가족 트라우마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부와 유가족협의회는 이렇게 결정했다. 한국심리학회도 비슷한 이유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골목길에서 시민 156명이 압사한 사고 명칭도 지명을 뺀 '10·29 참사'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던 당시 제주도는 행정안전부에 공문을 보내 사고 명칭에 무안공항도 함께 넣자고 건의했다. 공문을 보낸 시기는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엿새 만이었다.

제주도는 사고 여객기 이름이 제주로 시작하다 보니 참사가 마치 제주에서 일어난 것으로 오해돼 제주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건의를 했다.

도민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제주도의 심정은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더욱이 제주관광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산업이 아닌가.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모두 고려하더라도 공공기관인 제주도가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유가족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려 했다면, 그것도 참사 6일 만에 이런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사회적 논의 없이 참사 이름을 특정 집단 요구대로 정한다면 피해자 아픔을 외면하고 자신들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로 비친다", "참사 명칭이 아니라 제주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지 본질적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권단체와 학계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시계추를 현재로 돌려보자. 제주도는 지난달 27일 공공 CCTV 영상 보존기간을 60일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제주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을 경찰이 연이어 허위로 종결하고, 실종자들이 잇따라 주검으로 발견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내놓은 대책이다.

묘한 기시감이 든다. 실종 사건 허위 종결 사태는 경찰 내부 통제 기능이 상실돼 발생한 것이지 CCTV영상 보존 기간이 짧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특히 법은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에 수집한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됐을 때는 지체 없이 파기할 것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같은 이유로 CCTV 영상 보존 기간을 30일 이내로 하라고 권고한다.

그래서 정보 인권 분야 전문가들이 제주도의 이번 대책을 두고 "본질을 가린다", "성급하다", "공론화가 우선이다"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제주 이미지가 실추되니 뭐라도 해보겠다는 제주도의 심정을 이번에도 이해한다. 하지만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수는 없다.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사안일수록 신중한 대처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한다. 신속과 성급은 그 뜻만큼이나 간극이 큰데도 가끔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하는 소리다. <이상민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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