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0)한라대 실습 목장 입구~임도~편백림~고사리밭~족은노꼬메오름정상~상잣길~초지~창암재활원 입구
입력 : 2025. 12. 05(금) 03: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깊어가는 가을, 숲길에 스민 역사와 문화를 읽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숲길. 정은주 여행작가
표고버섯에서 시작된 숲의 기억
편백림과 조릿대, 숲의 양면성
오름서 만난 상흔과 생명의 물

[한라일보] 계절이 무르익어갈수록 가을색은 더욱 짙어져 간다. 지난 11월 8일 '202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열 번째 발걸음이 한라대 실습 목장 입구에서 시작됐다.



진한 가을 향기를 풍기는 숲 안으로 들어서자 통나무를 세워놓은 표고버섯 자목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표고버섯은 서늘하고 적당한 습기가 있는 곳에서 잘 자라죠. 한라산 해발 700m에서 1000m 사이가 가장 이상적인 조건인데요, 여기가 대략 720m 정도 됩니다." 인솔자로 나선 박훈갑 자연환경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조선시대부터 진상품으로 명성이 높았던 제주 표고버섯. 하지만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이 명품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표고버섯 자목은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같은 참나무류를 최고로 치지만 대체목으로 서어나무도 많이 이용했다고. 당시 표고버섯 재배로 한라산 숲이 얼마나 황폐해졌을지 짐작이 갔다. 지금은 기후변화가 더 큰 고민이다. "요즘 기후가 바뀌면서 봄과 가을이 짧아져서 버섯 생산이 한 해 한 번밖에 안 되고 있어요. 인건비는 올라가는데 생산량은 줄어들어 농장들이 위기에 처해 있죠."

가을 향기를 풍기는 표고버섯 자목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잘라낸 삼나무 통나무들을 쌓아 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숲 가꾸기 사업의 흔적이다. 단일림 위주인 삼나무를 간벌하는 것인데 빈 공간에 산불 확산 방지와 탄소 흡수 능력이 뛰어난 활엽수가 자리 잡게 되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숲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상잣성을 설명하는 박훈갑 자연환경해설사
전쟁의 상흔이 할퀴고 간 상처. 진지동굴을 지나고 있다.
삼나무 숲을 지나 목초지에 발을 내디뎠다. 원래 푸른 초지가 나타나야 하지만 모두 베어 낸 뒤라 광활한 대지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풀을 베지 않았다면 너른 초야가 펼쳐진 뉴질랜드나 영국을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인 풍경이었을 터이다. 아쉬운 마음을 접어놓고 다시 길을 나섰다.

편백나무 숲 지대로 들어서자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나무다.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있어 맨발로 걷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물질입니다. 사람에게는 유익하지만 다른 생물에게는 독성이 있어요." 실제로 편백나무를 제외하고 다른 식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광합성이 어렵고 강한 피톤치드 때문에 미생물이나 곤충도 살기 힘들다. 편백나무가 양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편백림을 벗어나자 이번엔 조릿대가 빼곡하게 들어선 공간이 펼쳐졌다. 제주조릿대는 육지의 조릿대와는 달리 잎 가장자리에 나타나는 하얀 줄무늬가 특징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한라산 국립공원 보호를 위해 소나 말 방목을 금지했는데 이처럼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조릿대는 뿌리줄기로 번식하며 촘촘하게 땅을 점령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게 만든다. 조릿대 너머로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무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지속가능한 숲을 위한 대안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산제비꽃
가막살나무열매
구름버섯(운지버섯)
족은노꼬메오름에서는 마치 숨골처럼 보이는 갱도진지와 마주했다. 1944년 말부터 일본군이 파놓은 것이다. 미군이 상륙할 것을 대비해 만들었지만 결국 일본이 항복하면서 미완성으로 남았다. "제주 4·3 때에는 주민들이 몸을 숨겼다가 발각되어 희생당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죠." 숲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 전쟁의 상흔에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간벌한 목재들 사이를 걸어가는 참가자들
내려가는 길목에서는 상잣성을 볼 수 있었다. 제주에 말을 기르기 위해 목장을 개설한 것이 몽골 시대부터다. 조선시대에는 국영 목장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중산간 지역에 10소장을 설치했는데 그중 오늘 걷는 곳이 5소장 구역에 속한다. 각각의 경계를 구분하고 말들이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쌓은 돌담을 잣성이라 하며 특히 고지대에 설치된 것을 상잣성이라 부른다고. 이러한 목장 지대는 갑오개혁 때 공식적으로 폐지됐지만 일부는 마을 공동목장으로 재편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은주(여행작가)
마지막 발걸음이 궷물오름 쪽으로 향했다. 중산간 지역에서 보기 드문 용천수가 솟는 곳이다. 용천수는 땅속에서 지하수가 솟아올라 나오는 물이다. 가장 윗물을 사람들이 마셨고 그다음 소나 말에게도 먹였다. 물이 없으면 사람도 동물도 살 수 없다. 지금은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옛날에는 금보다 귀한 물이었을 것이다.

이번 에코투어는 제주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 시간이었다. 숲이 좋아 그저 걸었던 길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마치 제주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압축해 놓은 듯했다.

정은주<여행작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216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에코투어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