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장관 이뤘던 동동포구 잘피, 14년 만에 흔적만 남아 저수온·해조류 과번식으로 소라·해삼·우뭇가사리 피해 속출 포구 밖 바다는 여전히 생명력… 어촌계 "지속가능 관리 고수" "외부인 싹쓸이·해양쓰레기 심각… 어촌계에 관리권 줘야"
[한라일보] 본보 해양탐사팀은 지난 7월 31일 오후 2시,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마을어장을 찾았다. 제9호 태풍 '크로사'의 간접 영향으로 제주 해안에는 강한 바람과 높은 물결이 일었지만, 만 지형인 이곳은 비교적 잔잔했다.
탐사지점
하도리 동동포구 전경
하도리 마을어장은 육상 개발에 따른 토사나 쓰레기 유입이 거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육상 양식장 배출수나 하천도 연결되지 않아 비교적 청정한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수중 탐사지점은 동동포구와 그 주변 마을어장이었다.
지난 2011년 7월 4일과 2015년 9월 수중탐사 당시 동동포구 안쪽에는 잘피 군락이 넓게 형성돼 있었다. 제주 최초로 인공 이식한 잘피(Zostera marina)가 방파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토끼섬까지 이어지는 조하대에도 잘피 군락이 넓게 퍼져 있었다. 잘피는 뿌리로 영양분을 흡수하고 수중에서 꽃을 피워 번식하는 해산 현화식물로, 파도가 잔잔한 모래질 해안에서 자라며 다양한 해양생물의 산란장과 은신처 구실을 한다.
그러나 이번 탐사에서 마주한 바다는 달랐다. 동동포구 안의 잘피는 거의 자취를 감췄고, 토끼섬 인근 잘피 역시 뽑히거나 훼손된 상태였다. 특히 잘피가 한창 자라는 5월, 무늬오징어를 노린 낚시꾼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피해가 매년 반복되고 있었다.
여름철 수온이 오르면 잡식성 어류인 독가시치가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잘피는 이 시기 좋은 먹잇감이 된다.
2011년 동동포구에서 촬영한 잘피군락
감태가 우거진 2015년 9월 하도리 수중생태계
산호말류가 가득찬 2025년 7월 하도리 수중생태계
여기에 평년보다 낮았던 겨울철 수온이 이곳 해양생태계에 변화를 일으켰다.
올해 제주 해역의 겨울 수온은 예년보다 약 1.5℃ 낮았고, 이로 인해 하도리뿐 아니라 제주 전역에서 미역 생육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한성홍 하도리어촌계장은 "올겨울 저수온 여파로 5~6월에는 바닷물이 갈색으로 변할 정도로 미역이 유난히 번성했다"며 "이 미역이 햇빛을 가리면서 우뭇가사리와 톳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이를 먹고 사는 소라·오분자기·해삼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우뭇가사리 생산량은 30t에 달했지만 올해는 14.3t으로 줄었고, 소라 역시 2023년 63t, 2024년 80t을 수확했으나 올해는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해삼은 지난해 247㎏을 건졌지만 올해는 아직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2015년 9월 하도리 조간대 모습
2025년 7월 하도리 조간대 모습
탐사팀은 이어 동동포구에서 약 50m 떨어진 바다로 이동해 수중탐사를 진행했다. 바닷속에는 우뭇가사리, 파래류, 두가닥바닷말, 감태가 가득 차 있었으며, 물결에 흔들리는 해조류 숲은 2015년 조사 당시의 풍요로운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문어와 군소 다양한 놀래기류가 유유히 오가며 바다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도리 바다가 여전히 풍요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촌계원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한성홍 계장은 "하도리는 금어기와 크기 제한을 철저히 지킵니다. 작은 소라, 전복, 문어는 다시 바다에 놓아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요"라며 마을 공동체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곧 표정이 굳어졌다. "문제는 외지인들입니다. 주민과 해녀들이 교대로 마을어장을 지키고 있는데도 규칙을 무시하고 해산물을 싹쓸이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공화장실이 없어 오물 문제도 심각합니다."
부채뿔산호
참곱스리
하도리는 다른 마을보다 해산물 수확량이 많아 공급처 확보도 고민거리다. 어촌계는 물량을 모아 업체에 납품하지만 가격은 개인 판매보다 낮게 형성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물량을 암암리에 거래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한 계장은 "농사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바다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민은 바다가 내어주는 만큼만 가져갈 뿐이죠"라며 "다만 외부인으로 인한 오염과 훼손은 심각합니다. 도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하거나, 어촌계에 관리 권한을 넘겨줘야 합니다. 현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토끼섬 인근은 잘피가 훼손되고 해양 쓰레기도 방치돼 있습니다. 어촌계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어
군소
수중탐사 모습
제주도 내 잘피를 연구하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주연구소 최선경 연구원은 "제주에 잘피 자생지가 10곳 있는데 전반적으로 생육 상태가 좋지 않다"며 "2015년만 해도 이곳 동동포구에는 잘피가 번성했지만 지금은 방파제 끝자락에 일부만 남아 있다. 정확한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고수온에다 잘피가 독가시치의 먹이가 되거나 파래가 일시적으로 덮어 성장을 방해하는 등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양탐사취재팀: 고대로 편집국장·오소범 기자/ 수중영상촬영: 오하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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