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4] 3부 오름-(53)노루샘, 얕은 물 혹은 젖은 곳을 뜻하는 북방 기원
입력 : 2024. 08. 13(화) 04: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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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가 많아 노루샘? 얕은 물이 고이는 샘

세오름 혹은 시오름이란 샘이 있는 오름
[한라일보]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구상나무숲을 벗어나면 고산초원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왼쪽 오름을 따라 잘 만들어진 나무 데크 위를 걷는다. 이 오름은 봉우리가 하나인가 둘인가. 두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는 부분이 조금 낮아 보일 뿐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첫 번째 마주하는 봉우리를 윗세족은오름이라고 한다. 정상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관이 그야말로 천하 절경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윗방애오름, 방애오름, 알방애오름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장구목오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곳에 설치한 설명판에는 이 오름들과 더불어 가장 높게 보이는 한라산 정상이 있는 오름을 '화구벽(백록담)'이라고 표기했다. 설마 고대인들이 주변의 오름들은 다 고유한 이름을 붙였는데, 정작 가장 높은 오름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면 진짜 화구벽이라고 했다고 보는 건가요? 이 오름이 바로 두무오름이다. 가장 높은 오름이라는 뜻이다. 본 기획 2부를 참고하실 수 있다.
이 윗세족은오름에서 한라산 정상 방향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윗세누운오름으로 부르는 오름이다. 이처럼 윗세족은오름과 윗세누운오름은 언제부턴가 이렇게 구분해 두 개의 오름으로 부르고 있다. 언제, 누가 이렇게 구분했단 말인가? 앞 회에서 오늘날 윗세오름은 세성제오름에 대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지명해설은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점을 제시했다. 전망대를 포함해서 정상 쪽 방향으로 보이는 봉우리도 원래 세오름이었다. 지금도 이 주변을 세오름밧 혹은 시오름밭이라고 부르는 점으로 볼 때 원래 이름은 세오름 혹은 시오름임을 알 수 있다.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 붉은오름은 불른 오름
윗세족은오름이라는 말은 세성제오름과 세오름의 '세'에서 '삼(三)'을 연상해 지어낸 얘기다. 세오름이 세 개의 오름이라면 윗세족은오름도 별개의 오름이라야 논리에 맞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렇게 이름 지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이 오름을 세오름 혹은 시오름이라는 이름 외에 '누운오름'이라 했는가. '누운오름'이라는 지명은 '서 있는'의 대비지명으로 '누운'이라고 했을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실은 '늘어진'의 뜻이다. 즉 '누운'이 아니라 '는'이다. '누운'이란 '선'에 대응하는 지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다'의 대비는 '앉다'를 쓰지 '눕다'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 주변에 '선'이라 할 만한 오름은 없다. 윗세족은오름과 윗세누운오름을 하나의 오름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 길게 늘어진 오름이 된다. 퉁구스어로 '느르'는 '긴' 혹은 '산맥'이란 뜻이다. 우리말 '늘다', '늘이다'의 어간 '늘'과 어원을 공유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일대는 3개의 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운오름과 붉은오름 2개가 있는 셈이다. 아니면 달리 세오름과 윗세오름 2개가 있는 셈이 된다.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 혹은 '는오름'이다. 긴 오름이라는 뜻이다.
누운오름과 붉은오름은 오름의 형태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붉은오름이란 여러 문헌에 붉은 색깔을 띠어서 이렇다고 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알타이어의 공통어원으로 '보로-'가 있다. 산이나 언덕을 의미한다. 그중 퉁구스어에는 '비루-칸'이 산을 지시하고, 만주어로 '보란', 솔롱어로 '비라칸'에 대응한다. 제주도의 고대인들은 불룩한 모양의 이 오름을 '보란오름' 혹은 '비라칸' 등으로 불렀던 것 같다. 이 발음은 '(배가) 불다'에서 느낄 수 있는 불룩한 모양을 연상하게 되고, 점차 '불른오름', '부른오름' 등으로 불렀던 것 같다. 이걸 알아들을 수 없었던 기록자들이 '붉은오름' 혹은 '적악(赤岳)'으로 표기하면서 지금의 붉은오름으로 고착된 것이다. 이곳 누운오름(늘어진오름)에 비해 불룩하게 생겼으니 '불른오름', 이게 점차 붉은오름이라 한 것이다. 제주도 전체적으로 붉은오름으로 표기하는 오름들은 거의 모두 인근에 낮거나 납작하거나 늘어진 오름 가까이에 있다.
노루샘의 ‘노루’, 짐승 노루와 무관, 성널오름의 ‘널’과 공통기원
노루샘이라는 샘은 바로 이 세오름에서 솟는 샘이다. 노루가 자주 이용하는 샘이라서 이렇게 부른다고 흔히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루'라는 음상에서 짐승 노루가 연상되어서다. 노루샘이라는 샘 이름은 노루와 관련이 없다. 이 '노루'라는 말은 제주도 고대인의 유산이다. 퉁구스어권과 몽골어권의 여러 언어에서 '노르'가 '얕은 물' 혹은 '젖은 곳'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제주도 전역에서 '노리물', '노린-', 축약형 '논-' 등이 붙은 지명이 많다. 심지어 '노루 獐(장)' 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음이 같은 '장수 將(장)'까지로 분화한 경우도 있다. 장수물이라는 지명은 이런 경우다. 성널오름의 '성'은 샘에서 기원한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널'은 바로 이 '노르'에 온 것이다. 성널오름은 샘과 얕은 물이 있는 오름이다.
한편, 본 기획 2부에서 다루었듯이 백록담의 '록', 물장오리의 '장'도 '노르'에서 기원했다. 호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퉁구스어로 'noor'라 발음한다. 현대 몽골어에서는 'nuur'라 한다. 이곳 노루샘처럼 '얕은 물'을 지시하는 경우 퉁구스어에서 'ńür-', 몽골어에서 'nor-'로 짧게 발음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세오름은 샘이 있는 오름,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이다. 윗세오름은 세오름 위의 또 다른 세오름이다. 붉은오름은 불른(부른)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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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라산 영실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구상나무숲을 벗어나면 고산초원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왼쪽 오름을 따라 잘 만들어진 나무 데크 위를 걷는다. 이 오름은 봉우리가 하나인가 둘인가. 두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는 부분이 조금 낮아 보일 뿐 뚜렷하게 구분이 되는 정도는 아니다. 첫 번째 마주하는 봉우리를 윗세족은오름이라고 한다. 정상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관이 그야말로 천하 절경이다. 오른쪽으로 멀리 윗방애오름, 방애오름, 알방애오름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장구목오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곳에 설치한 설명판에는 이 오름들과 더불어 가장 높게 보이는 한라산 정상이 있는 오름을 '화구벽(백록담)'이라고 표기했다. 설마 고대인들이 주변의 오름들은 다 고유한 이름을 붙였는데, 정작 가장 높은 오름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면 진짜 화구벽이라고 했다고 보는 건가요? 이 오름이 바로 두무오름이다. 가장 높은 오름이라는 뜻이다. 본 기획 2부를 참고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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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오름이라고도 부르는 세오름은 샘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 붉은오름은 불른 오름
윗세족은오름이라는 말은 세성제오름과 세오름의 '세'에서 '삼(三)'을 연상해 지어낸 얘기다. 세오름이 세 개의 오름이라면 윗세족은오름도 별개의 오름이라야 논리에 맞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렇게 이름 지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면 왜 이 오름을 세오름 혹은 시오름이라는 이름 외에 '누운오름'이라 했는가. '누운오름'이라는 지명은 '서 있는'의 대비지명으로 '누운'이라고 했을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그러나 실은 '늘어진'의 뜻이다. 즉 '누운'이 아니라 '는'이다. '누운'이란 '선'에 대응하는 지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다'의 대비는 '앉다'를 쓰지 '눕다'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이 주변에 '선'이라 할 만한 오름은 없다. 윗세족은오름과 윗세누운오름을 하나의 오름으로 본 것이다. 그러면 길게 늘어진 오름이 된다. 퉁구스어로 '느르'는 '긴' 혹은 '산맥'이란 뜻이다. 우리말 '늘다', '늘이다'의 어간 '늘'과 어원을 공유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일대는 3개의 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운오름과 붉은오름 2개가 있는 셈이다. 아니면 달리 세오름과 윗세오름 2개가 있는 셈이 된다.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 혹은 '는오름'이다. 긴 오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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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샘의 '노루'는 '얕은 물' 혹은 '젖은 곳'이라는 북방어 '노르'에서 기원한다. |
노루샘의 ‘노루’, 짐승 노루와 무관, 성널오름의 ‘널’과 공통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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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
한편, 본 기획 2부에서 다루었듯이 백록담의 '록', 물장오리의 '장'도 '노르'에서 기원했다. 호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경우는 퉁구스어로 'noor'라 발음한다. 현대 몽골어에서는 'nuur'라 한다. 이곳 노루샘처럼 '얕은 물'을 지시하는 경우 퉁구스어에서 'ńür-', 몽골어에서 'nor-'로 짧게 발음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세오름은 샘이 있는 오름, 누운오름은 늘어진 오름이다. 윗세오름은 세오름 위의 또 다른 세오름이다. 붉은오름은 불른(부른)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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