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61)나를 팔다-변종태
입력 : 2024. 04. 02(화) 00:00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제주도에서 달걀 장수들은

한 가지 물건을 들고 다니면서 세 가지를 판다.

'달걀 삽서, 계란 삽서, 독새기 삽서.'

오늘 밤, 아들 녀석이 두드리는 피아노 건반에서도

C#과 D♭는 딴이름한소리란다.

문득 유월 보름달을 쳐다보면서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질,

뱉는 이의 입에 따라 다르게 발음될

듣는 이의 귀에 따라 달라진

달빛이랄지, 월광月光이랄지

저 사물의 화려한 광배光背,

쏟아내고 나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저 사물의 빛, 혹은 빛 같은 것들.

나를 저 달빛에 끼워 팔 수는 없을까.

삽화=배수연


오랜 친구 중에 당신을 악어, 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스텔라에게, 라고 써 보낸 예쁜 카드도 책상에 놓여있다. 이제는 당신이 없다. 그러나 누군가 방금 만나고 온 사람처럼 당신의 이름을 내게 속삭여 줄 때가 있다. 눈을 감아도 또박또박 적힌다. 유행을 타기도 하지만, 대개 한 번 정해진 이름이 하나의 세계를 감당하고 있다. 달걀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부르지만 부르고 나면 또 잊히고 마는 흔한 이름이지만 이름이 생기고 사라질 때는 이유가 있고, 그 최초의 부름이나 경위 등에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별 차이 없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해도 무슨 상관인가. 시인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다. 그중 십 리 길을 따라 나오는 어느 이름을 골라 '삽서'를 외칠 수 있고, 그때 자신의 이름을 끼워 부르고 싶어진다. 나를 '놈'이라 하고 '선생'이라 하고 '꼰대'라 해도 맞다. 한때 버렸던 이름이 돌아오기도 한다. 어떤 이름은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살아 있고, 자신을 숨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월광처럼 가뭇없이 사라질 이름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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