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주愛빠지다] (17)치유농업사 김도희씨
입력 : 2023. 09. 20(수) 00:00수정 : 2023. 09. 20(수) 20:15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 실감해요"
제주생활 7년째인 김도희씨가 서귀포에서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인 자구리공원에서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진선희기자
중복 장애 딸 자립 등 위해 7년 전 서울서 서귀포로
숙박업·카페 운영 경험… "서귀포엔 안전지도 있어"

이주 희망자들에 ‘서귀포 정착 도우미’로 실질적 조언

[한라일보] 그가 평생 살아온 서울을 떠나 서귀포로 향하면서 떠올린 말은 '행복'이었다. 서귀포는 중복 장애가 있는 딸이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해 하루라도 빨리 자립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겼다. 어느덧 7년째. 그는 가족들과 이곳에서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서귀포시에 사는 치유농업사 김도희(55)씨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엔 여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졸업하면 그것들이 많이 줄어요. 딸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인데, 시설에 들어가지 않는 한 제 일을 내려놓고 24시간 오롯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거죠. 이러면 딸이나 저나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서귀포로 가자고."

그에게 서귀포는 "공기 좋고 빼어난 자연 환경, 거기다 아이를 잃어버려도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작은 도시의 이점"을 지닌 곳이다. 딸이 어릴 적 물속에서 몸이 기운 뒤 천천히 일어서길 반복하는 치료를 받으며 처음 한 발을 내디뎠듯 서귀포도 힘든 겨울이 지난 후 봄을 보여줄 거란 기대가 있었다. 그는 2015년에 두 달쯤 제주에 머물며 구석구석 돌아봤고, 2016년 딸이 졸업하자 그해 남원읍에 둥지를 틀었다.

딸과 함께 제주에서 시작한 일은 단독 주택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 운영이었다. 딸의 첫 일자리인 셈이다. 조식 옵션 등 요리연구가로 이력을 쌓아온 그의 전문성을 살려 숙박업을 꾸려가던 중에 이석증 등으로 쓰러졌다. 결국 그 공간은 '한달살이'용으로 내주게 됐다.

2019년 무렵 남편까지 서귀포에 정착하면서 가족에게는 다시 변화가 생긴다. 이듬해 서귀동에 딸의 이름을 내건 수프 전문 브런치 카페 '애나의 숲'을 연 것이다. 장애인 창업 지원 사업으로 딸이 차린 가게였고 엄마인 그는 셰프로 일했다.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맛집으로 알려지는 등 딸의 자립에 한 걸음 더 다가섰지만 얼마 전 갑작스런 남편의 암 수술로 개업한 지 약 3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보건복지부 인가를 거쳐 서귀포시의 발달장애인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제주드림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던 남편은 지금 건강을 되찾는 데 전념하고 있다.

제주살이를 하면서 성우, 시 낭송가, 여행 큐레이터 등 여러 일을 배우고 경험한 그는 최근엔 국가자격증을 따고 지난 1월부터 제주도농업기술원에 배치돼 치유농업사로 활동 중이다. 올해 26살이 된 딸은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주간 활동 서비스를 통해 또 다른 일상을 즐기고 있다. 그와 가족이 낯선 땅에서 몇 차례 몰아친 높은 파도를 헤치고 순항할 수 있었던 건 '서귀포' 덕분일지 모른다.

"서귀포의 시간이 따로 있대요. 25시간이라고. 주변 분들이 여유가 있고 서두르지 않아요. '애나가 어디서 버스 타고 가는 거 봤어'라는 말을 듣거나 딸에게 '내가 없으면 누구 이모네 집에 가 있어'라고 하는 것처럼 서귀포에는 '안전 로드 맵'도 있어요."

딸이 서귀포 생활에 적응하는 걸 보며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그는 그만큼 제주에 스며들기 위해 적극 나섰고 차근차근 인적 네트워크를 다졌다. 제주에 이주하려는 이들이 그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추위, 바람, 습기 등이 있는 사계절을 살아봐서 결정하라고 말한다. 무엇을 하며 먹고 살지 등 실질적 조언도 건넨다. '서귀포 정착 도우미'가 되어 '이주민 선배'로서 겪었던 일을 들려준다는 그다. "나무들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잘 자라려면 햇빛과 물, 기다림이 필요하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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