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하지 마” 명령 짓눌린 내면적 허기의 근원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 '욕구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5. 28(금) 00:00
외모 집착 '낮은 자존감' 반박
욕구의 주체로 자기 돌봄을

르누아르가 그린 저 유명한 그림을 떠올려 보자. 그림 속 덩치 큰 여자들은 관능성과 풍만함으로 매력을 뿜는다. 그들은 강기슭을 따라 느긋하게 자리 잡은 채 태양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고, 널찍하고 튼튼한 등 뒤론 머리카락이 물결치듯 흘러내린다. 이 같은 이미지를 창조한 르누아르는 여성의 육체가 없었다면 자신은 결코 화가가 되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캐럴라인 냅(1959~2002)은 '욕구들'의 프롤로그에 이 그림을 불러냈다. 르누아르의 세계와 지금 이 세계가 딴판임을 환기하려는 목적이다. "(여자들의) 육체적 요구와 정서적 욕구가 한데 얽히고 똑같은 비중을 차지해 서로 구별되지 않는" 이 그림의 세계와 달리 현실에서 여자의 육체는 위험하고 불온하고 그릇된 것으로 경험되었고, 육체의 갈망들은 낱낱이 구분되어 있어서다.

'욕구들'은 저자가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식욕, 성욕, 애착, 인정욕, 만족감 등 여성의 여러 욕구와 사회 문화적 압박을 정치하게 풀어낸 책이다. 여자의 표준 체중을 54킬로그램으로 칠 때, 그는 저녁으로 사과 한 알과 작은 치즈 큐브 하나를 먹으며 그보다 17킬로그램 적은 몸을 경험했고 그 과정 속에 내면적 허기의 근원을 끈질기게 밝혔다.

캐럴라인 냅의 말대로, 20세기 후반에 성년이 된 여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런 소리를 들었다. "너무 많이 먹지 마, 너무 커지지 마, 너무 높이 올라가지 마, 너무 많이 원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그는 이런 명령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여자들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데, 대개 파편화된 렌즈를 통해 음식, 섹스, 쇼핑 등으로 한 번에 한 가지 병폐만 따로 떼어 검토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체중과 외모에 대한 집착의 근거를 '낮은 자존감'에 두는 걸 반박한다. 그 말은 좌절된 욕구에서 배어나는 슬픔과 허함, 엉뚱한 대상으로 치환된 욕구에 동반되는 괴로움에 대해 아무 것도 포착하지 못한다고 했다. 어제의 좋은 하루가 24시간 동안 800칼로리 이하를 먹는 거였다면, 이제는 하루치 일을 견실하게 해낸 날, 친구와 웃으며 통화한 날이 좋은 날이 될 순 없을까. 식욕을 통제하며 욕구를 단속하는 자기 학대를 벗고 자신의 관점과 용어로 욕망을 정의할 수 있는 자기 돌봄으로 나아가길. 정지인 옮김. 북하우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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