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침묵 속 그들이 일깨웠다, 잊지 말라고
입력 : 2026. 03. 26(목) 18:17수정 : 2026. 03. 26(목) 18:20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허호준의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
30여 년 기자·연구자로 살며 축적한 4·3 자료 토대로 집필
1992년 다랑쉬굴 취재 계기 같은 시대 겪은 두 사람 삶 좇아
100개 장면에 담은 4·3 역사… 엇갈린 기록·증언 진실 탐색
[한라일보] 1992년 4월 1일, 그는 다랑쉬굴 안에서 열한 구의 유해를 마주했다. 공포보다 더 깊은 침묵 속에서 "한 시대의 갇힌 진실"을 대면했던 순간이었다. 그해 5월 15일 다랑쉬굴 안에 놓여 있던 유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으나 곧바로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뼛가루를 조금이라도 주면 봉분을 만들겠다는 일부 유족의 요구는 거부됐다. 다랑쉬굴 앞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운구하기로 했으나 화장된 유해는 서둘러 김녕 앞바다에 뿌려졌다. 무참한 폭력으로 죽임을 당한 이들이 또다시 폭력에 노출됐다. 그는 당시 그런 과정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두고두고 자신을 짓눌렀다고 털어놓는다. 1989년 제주4·3 41주년부터 취재를 시작했던 그에게 다랑쉬굴은 4·3을 계속 기억하고 말해야 한다는 걸 일깨운 현장이었다.

기자이면서 연구자로 30여 년에 걸쳐 수많은 4·3 자료를 축적했던 허호준 박사(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전 한겨레신문 기자)가 이를 바탕으로 두 권의 책을 냈다. 출판사(혜화1117) 측은 전작인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2023)가 4·3 입문서라면 이번에 출간된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인물의 삶을 통해 4·3을 체험하게 하고,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는 기록과 자료를 통해 그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2025년 제13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당선작을 보완한 것이다. '같은 시대를 다르게 겪은 두 사람의 삶에 관하여'라는 부제처럼 채진규와 이명복(책에 등장하는 주요 인명은 공적 인물이 아닌 경우 가명을 썼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다랑쉬굴에 웅크린 채 죽음을 맞았던 희생자들의 주검을 정리했던 채진규,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죽음의 땅을 넘어 일본으로 밀항했던 이명복. 청년 채진규는 무장대에 납치돼 산으로 끌려갔고, 청년 이명복은 시대의 모순과 폭력에 맞서 스스로 산으로 들어갔다. 기자로서 두 사람과 주변 이웃들의 삶을 좇은 저자는 해방된 땅에서 통일 조국을 원했던 그 시대의 섬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은 흙이 되어버린 이름 없는 목소리들을 조용히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평화롭기를 거듭 기원했다.

530여 쪽 분량의 '… 아카이브로 본 역사'는 '100개의 장면으로 마주하는 그날들'이란 부제를 달았다. 그간 저자가 읽고 본 기록 중에서 추려낸 자료로 엮은 100개의 장면을 따라가며 독자들이 4·3의 역사를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 장면은 1945년 9월 23일 '일본군이 기록한 '제주도 건국준비위원회' 결성'에서 1957년 8월 9일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오스트레일리아 대표단 소속 아쉬윈의 제주도 시찰 보고서를 다룬 "제주도민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까지 이어진다. 날짜순으로 1부터 100까지 번호를 매긴 장면들은 사진 한 장, 문서 한 건, 증언 한마디, 기사 한 줄이 긴 설명보다 더 강력하게 시대를 증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서로 다른 기록과 증언이 교차하는 지점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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