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60] 3부 오름-(119)넉시오름은 봉우리 오름
입력 : 2026. 01. 20(화) 03: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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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 나간 오름이라는 지명 유래는 넋 나간 이야기

지명 유래와 지명 전설의 혼란
[한라일보] 넉시오름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마을 가까이 있다. 표고 146.2m, 자체높이 56m다. 남서~북동으로 등성마루를 이루고 남동 사면으로 골이 얕게 패였다. 분화구는 북서사면에 있는데, 매우 넓고 거의 평평하다고 할 정도로 얕아 분화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이 오름명의 유래라면서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① 태흥리 출신인 날개 돋은 장수가 관군에게 쫓기자 한달음에 달아나면서 오름의 정상을 팍 밟으니 오름 넋이 그만 나가버렸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에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② 큰 비가 내린 뒤 섯내가 흘러가는 북서쪽 동산을 지나던 송아지가 냇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돌아누운 어미 소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본 기획에서도 누차 다룬 적이 있지만 제주도의 지명을 다룬 몇 가지 문헌들을 보면 지명 유래라는 말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지명 유래'란 특정 지역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이름의 근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위에 든 날개 돋은 장수가 오름 정상을 밟으니 오름 넋이 나가버렸다든가 어미 소가 넋을 잃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지명 전설'이라고 하는 것이지 지명 유래라 할 수 없다. 넋 나간 얘기란 말을 듣기에 알맞다.
‘넉시’는 넋과 무관
17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삼읍도총지도를 비롯해 여러 고전에서 백악(魄岳), 넉시악, 혼악(魂岳) 등으로 기록했다. 지역에서 백리악(魄犁岳), 백사악(魄獅岳), 백씨악(魄氏岳), 혼악(魂岳) 등으로 채록된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판 제주오름지도에는 넉시악을 대표지명으로 하고 넉시오름, 백리악을 병기했다. 네이버지도에는 백리악, 카카오맵에는 넉시악을 대표지명으로, 넉시오름, 백리악을 병기했다. 남제주군 고유지명이라는 책에는 옷귀오름이라고도 표기했다.
이 옷귀오름이라는 지명은 옷귀에 있는 오름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백악(魄岳)과 혼악(魂岳)의 '백(魄)'과 '혼(魂)'은 모두 그 훈이 '넋'이다. 이 오름의 지명 '넉시'를 '넋'이라 보고 쓴 훈가자 표기다. 만약 이렇게 쓴 당사자가 실제 '넋'이라는 뜻으로 썼다면 훈독자 차자표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개념을 고대인들이 지명에 사용했을 가능성은 적다.
백리악(魄犁岳)은 '넋(넉) 백(魄)'과 '얼룩소 리(犁)'의 결합 표기다. '소'는 중세어 '쇼'로 발음했으므로 이 지명은 '넉쇼악'의 훈가자 표기다. 한자 표기로서는 아무런 뜻이 없는 훈의 음만 나타냄으로써 지명을 표기하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것을 훈독자로 보고 해석하려고 하다 보니 소가 넋을 잃었다느니 하는 엉뚱한 얘기를 창작하게 된 것이다.
백사악(魄獅岳)은 '넋 백(魄)'과 '사자 사(獅)'의 결합 표기다. 전 회에서 여쩌리오름을 사악(獅岳)이라 표기한 예를 볼 수 있었다. 이 경우 이 글자는 '사자(중세어 ᄉᆞᄌᆞ) 사' 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여기서는 '작을 ᄉᆞ(小)'의 음을 음독자 차용 방식으로 동원했다. '작은 오름'의 뜻이었다. 그러나 백사악(魄獅岳)이란 표기에서 '사(獅)'는 '넉시(오름)'의 '시'를 나타내려고 동원했다. '사자 사'는 중세어로 'ᄉᆞᄌᆞ ᄉᆞ'로서 'ᄉᆞ'라고 발음했다. 이런 지역주민의 발음을 받아적으려다 나온 한자가 '사자 사(獅)'였던 것이다.
백씨악(魄氏岳)의 '씨(氏)'는 중세에는 '시'로 읽었다. 1569년 월인석보나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 등에는 오늘날처럼 '~씨'같이 썼지만, '시 시(氏)'라 했다. 백씨악(魄氏岳)이라는 지명도 '넉시오름'을 쓰려고 한 지명이다. 오늘날의 '넉시악' 표기 중 '시'는 '시(氏)'를 비롯해 '쇼(犁)', 'ᄉᆞ(獅)' 등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넉시악'이란 '넉+시+악'의 구조임을 추정할 수 있다.
‘넉시’, 봉우리 오름
핵심은 이 구조에서 '넉'과 '시'가 가리키는 의미가 각각 무엇이냐이다. 우선 '시'라는 표기는 본 란의 달랑쉬, 어승생, 걸세오름 편을 포함해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걸세오름의 경우 '걸+세'의 구조이며, 그동안 지명 출전을 검토해 보면 '세' 외에도 '쉐, 시'로도 나타난다. 다랑쉬오름의 지명에서는 시(時), 수(秀), 수(岫), 수(峀), 어승생의 지명에서 는 '생', '싕', '숱', 'ᄉᆞᆺ', '싕', 모슬악에서 나타나는 '슬(瑟)'을 비롯해 한반도 여러 곳에서 보이는 '修理(수리)', '술(述) 혹은 술이(述爾)', '수래(水來)', '거(車, 수래 거)', '주(酒, 술 주)', '수(首) 혹은 수을(首乙)'의 한 예이다. 요약하자면 '시'는 '수리'의 축약형의 하나이다. 봉우리를 지시한다.
가까이에 자배봉과 운지악이 보인다. 자배봉 혹은 자배오름이란 '위가 평평하고 얇은 오름'이란 뜻이다. 이후 설명하겠지만 운지악은 작고 위가 평평한 오름이란 뜻이다. 그에 비해 '넉시오름'의 '시'란 봉우리란 뜻을 갖는다.
그렇다면 '넉'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고대어로 '언덕', '(작은) 산', '(주변보다 다소) 높은 곳'을 의미한다. 퉁구스어 기원이다. 몽골어계의 언어에서는 비교할 만한 어휘가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어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어에서는 어두음 'n'이 탈락한 형태 '오키루, 오코스, 오코루(おきる·おこす·おこる)'에 남아 있는데, '일어나다'를 의미한다. 넉시오름 지명에 화석화돼 있는 이 말은 제주어의 기원을 해명해 줄 단서의 하나일 수 있다.
이런 어원들을 종합해 보면 넉시오름이란 '넉시' 자체로 이 오름 지명이며, '작은 봉우리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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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넉시오름은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마을 가까이 있다. 표고 146.2m, 자체높이 56m다. 남서~북동으로 등성마루를 이루고 남동 사면으로 골이 얕게 패였다. 분화구는 북서사면에 있는데, 매우 넓고 거의 평평하다고 할 정도로 얕아 분화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오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① 태흥리 출신인 날개 돋은 장수가 관군에게 쫓기자 한달음에 달아나면서 오름의 정상을 팍 밟으니 오름 넋이 그만 나가버렸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이에 연유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② 큰 비가 내린 뒤 섯내가 흘러가는 북서쪽 동산을 지나던 송아지가 냇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돌아누운 어미 소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본 기획에서도 누차 다룬 적이 있지만 제주도의 지명을 다룬 몇 가지 문헌들을 보면 지명 유래라는 말에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지명 유래'란 특정 지역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이름의 근원과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위에 든 날개 돋은 장수가 오름 정상을 밟으니 오름 넋이 나가버렸다든가 어미 소가 넋을 잃었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은 '지명 전설'이라고 하는 것이지 지명 유래라 할 수 없다. 넋 나간 얘기란 말을 듣기에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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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넉시오름, 작은 봉우리라는 뜻의 지명이다. 남쪽에서 촬영. 사진 김미경 |
177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삼읍도총지도를 비롯해 여러 고전에서 백악(魄岳), 넉시악, 혼악(魂岳) 등으로 기록했다. 지역에서 백리악(魄犁岳), 백사악(魄獅岳), 백씨악(魄氏岳), 혼악(魂岳) 등으로 채록된다.
2023년 제주특별자치도판 제주오름지도에는 넉시악을 대표지명으로 하고 넉시오름, 백리악을 병기했다. 네이버지도에는 백리악, 카카오맵에는 넉시악을 대표지명으로, 넉시오름, 백리악을 병기했다. 남제주군 고유지명이라는 책에는 옷귀오름이라고도 표기했다.
이 옷귀오름이라는 지명은 옷귀에 있는 오름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백악(魄岳)과 혼악(魂岳)의 '백(魄)'과 '혼(魂)'은 모두 그 훈이 '넋'이다. 이 오름의 지명 '넉시'를 '넋'이라 보고 쓴 훈가자 표기다. 만약 이렇게 쓴 당사자가 실제 '넋'이라는 뜻으로 썼다면 훈독자 차자표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 개념을 고대인들이 지명에 사용했을 가능성은 적다.
백리악(魄犁岳)은 '넋(넉) 백(魄)'과 '얼룩소 리(犁)'의 결합 표기다. '소'는 중세어 '쇼'로 발음했으므로 이 지명은 '넉쇼악'의 훈가자 표기다. 한자 표기로서는 아무런 뜻이 없는 훈의 음만 나타냄으로써 지명을 표기하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것을 훈독자로 보고 해석하려고 하다 보니 소가 넋을 잃었다느니 하는 엉뚱한 얘기를 창작하게 된 것이다.
백사악(魄獅岳)은 '넋 백(魄)'과 '사자 사(獅)'의 결합 표기다. 전 회에서 여쩌리오름을 사악(獅岳)이라 표기한 예를 볼 수 있었다. 이 경우 이 글자는 '사자(중세어 ᄉᆞᄌᆞ) 사' 자임에는 틀림없지만, 여기서는 '작을 ᄉᆞ(小)'의 음을 음독자 차용 방식으로 동원했다. '작은 오름'의 뜻이었다. 그러나 백사악(魄獅岳)이란 표기에서 '사(獅)'는 '넉시(오름)'의 '시'를 나타내려고 동원했다. '사자 사'는 중세어로 'ᄉᆞᄌᆞ ᄉᆞ'로서 'ᄉᆞ'라고 발음했다. 이런 지역주민의 발음을 받아적으려다 나온 한자가 '사자 사(獅)'였던 것이다.
백씨악(魄氏岳)의 '씨(氏)'는 중세에는 '시'로 읽었다. 1569년 월인석보나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 등에는 오늘날처럼 '~씨'같이 썼지만, '시 시(氏)'라 했다. 백씨악(魄氏岳)이라는 지명도 '넉시오름'을 쓰려고 한 지명이다. 오늘날의 '넉시악' 표기 중 '시'는 '시(氏)'를 비롯해 '쇼(犁)', 'ᄉᆞ(獅)' 등으로 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넉시악'이란 '넉+시+악'의 구조임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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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넉시오름에서 바라본 자배오름(오른쪽)과 운지악(왼쪽). 사진 김찬수 |
‘넉시’, 봉우리 오름
핵심은 이 구조에서 '넉'과 '시'가 가리키는 의미가 각각 무엇이냐이다. 우선 '시'라는 표기는 본 란의 달랑쉬, 어승생, 걸세오름 편을 포함해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걸세오름의 경우 '걸+세'의 구조이며, 그동안 지명 출전을 검토해 보면 '세' 외에도 '쉐, 시'로도 나타난다. 다랑쉬오름의 지명에서는 시(時), 수(秀), 수(岫), 수(峀), 어승생의 지명에서 는 '생', '싕', '숱', 'ᄉᆞᆺ', '싕', 모슬악에서 나타나는 '슬(瑟)'을 비롯해 한반도 여러 곳에서 보이는 '修理(수리)', '술(述) 혹은 술이(述爾)', '수래(水來)', '거(車, 수래 거)', '주(酒, 술 주)', '수(首) 혹은 수을(首乙)'의 한 예이다. 요약하자면 '시'는 '수리'의 축약형의 하나이다. 봉우리를 지시한다.
가까이에 자배봉과 운지악이 보인다. 자배봉 혹은 자배오름이란 '위가 평평하고 얇은 오름'이란 뜻이다. 이후 설명하겠지만 운지악은 작고 위가 평평한 오름이란 뜻이다. 그에 비해 '넉시오름'의 '시'란 봉우리란 뜻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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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원들을 종합해 보면 넉시오름이란 '넉시' 자체로 이 오름 지명이며, '작은 봉우리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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