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람과 문화로 거리를 바꾸자] (2)이중섭거리 차 없는 거리
입력 : 2024. 04. 22(월) 00:00수정 : 2024. 04. 23(화) 09:13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차량보다 사람… 걸어서 찬찬히 보아야 더 좋은 곳으로
이중섭 거주지 맞은편 동서 방향
주말 보행자전용도로 지속 안돼
남북 방향 일부 구간 선언적 의미
도심에 자리한 대표적 문화 거리
예산 투입한 걷기 좋은 길 만들기
보행 만족도 조사 등 사후 관리를

[한라일보] "이중섭 문화의 거리가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면 이 일대에 문화관광벨트가 형성돼 문화와 쇼핑을 즐기려는 시민과 관광객이 몰려들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귀포시가 2010년 4월부터 주말마다 이중섭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겠다며 밝혔던 포부다. 당시 계획은 이중섭거리로 명명된 옛 동명백화점 네거리(서귀포매일올레시장 입구)에서 솔동산 서귀포수협 앞까지 340m 구간을 토요일 오후 1시부터 일요일 밤 12시까지 차량이 드나들 수 없는 도로로 만드는 거였다. 그러면서 서귀포시는 차 없는 거리에 총 15억 원을 투자해 보행 환경을 개선하고 노천카페 등을 조성하겠다고 했다. 차 없는 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솔동산 방면에서 바라본 이중섭거리. 오른편에 보행우선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주말 특정 시간대 차량 통행 제한 표지판=결론적으로 이중섭거리는 문화의 거리 상징성을 살린 선언적 의미의 차 없는 거리로 남았다. 대신에 서귀포시는 이중섭 거주지 맞은편 동서 방향 도로를 수년간 차 없는 거리로 가동했다. 2012년 8월부터 보행자전용도로로 지정돼 주말에 각종 공예품을 파는 문화예술디자인시장이 섰다. 이 구간의 차 없는 거리가 효력을 잃은 것은 2022년 8월이다. 주변에 건축물이 생겨나고 차 없는 거리 지정으로 인한 사유 재산권 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교통시설심의위원회를 거쳐 해제 절차를 밟았다. 현재는 도로 한편에 주차선이 그어진 일방통행로로 바뀌었다.

당초 서귀포시는 폭이 좁고 경사도가 큰 일방통행 도로인 남북 방향 이중섭거리 구간 전체를 보행자전용도로로 지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이 차 없는 거리가 되면 기존 열악한 주차 공간과 도로 환경 탓에 교통 혼잡이 빚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인근 상가에서는 차량 통행을 제한하면 주말 손님들이 감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에 이중섭거리 남북 방향 구간은 앞서 지정된 동서 방향 보행자전용도로와 연계해 주말마다 차량 진입을 제한하되 전체가 아닌 중간쯤부터 차 없는 거리를 적용했다. 남북 방향 일부 구간에서는 문화예술디자인시장과는 또 다른 아트마켓이 주말마다 열렸다. 옛 서귀포관광극장 부근 언덕배기의 이중섭거리 야외 전시대를 중심으로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꾸리던 아트마켓이 진행될 때면 셀러들이 직접 도로에 안내판을 세워 차량이 들어오는 걸 막았다.

서귀포관광극장 건너편에는 차 없는 거리 표지판('이중섭거리 차량 통행 제한 토요일 13:00부터 일요일 24:00까지')이 달려 있다. 서귀포시가 지난해 10월부터 야간 걷기 코스 연계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인 서귀포관광극장 미디어 파사드용 기기가 표지판 바로 옆에 설치되면서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차 없는 거리의 '흔적'을 보여준다.

서귀포관광극장 맞은편에 설치된 이중섭거리 주말 차량 통행 제한 표지판. 사진=진선희기자
▶시속 30㎞ 이하 차량 통행 보행우선구역=이중섭거리가 차 없는 거리로 구속력을 갖는 장치는 사라진 상태이지만 보행우선구역으로 지정돼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 왔다. 보도를 정비했고 차량들은 30㎞ 이하로 속도를 낮춰 지나가도록 했다.

교통약자법에 의한 보행우선구역에서는 보행량이 밀집되는 곳을 정해 도로, 주변 환경 등 보행자의 통행 안전성과 편리성에 초점을 맞추는 사업이 추진된다. 구역의 중심 공간과 주요 시설을 연결하는 보행 네트워크 구축, 보행 편의와 쾌적성을 위한 식재, 가로 시설물 설치 등이다. 또한 보행 환경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도로의 포장, 조경, 조명 시설 등의 개선도 이루어진다.

이중섭거리가 탄생하고 꾸준히 예산을 들여 보행자를 위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만큼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서귀포시 작가의 산책길 핵심 코스로 이중섭미술관, 서귀포관광극장 등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시설만이 아니라 공예품 판매점 등 문화예술 상권이 조성되어 있어서 방문객 프로그램 개발, 보행 만족도 조사 등이 필요하다.

보행우선구역인 이중섭거리에 차량 통행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한다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사진=진선희기자
사람과 예술이 모여드는 세계 곳곳의 축제나 장소에 차 없는 거리 콘셉트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 없는 거리는 단순히 자동차들이 통행을 멈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공간을 보행자에게 되돌려주는 일이다. 사람들은 걷는 행위를 통해 그곳의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도심에 자리한 이중섭거리는 그런 점에서 차보다는 사람이 먼저인 정책 실현에 맞춤한 곳이다. 찬찬히 걷는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서귀포라는 도시, 거기에 살아온 이들의 역사를 나이 먹은 그대로 만날 수 있어서다.

서귀포시는 코로나19 무렵에 중단됐던 아트마켓이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에 맞춰 이중섭거리 차 없는 거리 운영 방향을 고심하고 있다. 주말 차 없는 거리를 재개할 경우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타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예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측은 "새로 들어선 숙박업소로 인해 종전처럼 차 없는 거리를 운영하면 차량 통행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며 "이를 해소하려면 남북 방향 차 없는 거리 구간이 이전보다 더 줄어들 수 있어 고민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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