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제주살이] (19)예술가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입력 : 2022. 01. 18(화) 00:00
강요배 선생과 낮술을 했다. 그 시간은 살아온 만큼의 정적의 무엇이 줄을 당기며 알지 못할 강을 건너는, 마치 줄나룻배에 탄 듯 참 부드러웠으며 '귀덕화사'라 이름 붙여진 작업실은 개천가에 넓게 자리하고, 모처럼 날도 포근해 마당에 빨래나 그릇을 말리기에도 낮술하기에도 좋은 날이라고 나무들 사이 수선화 꽃들은 속삭였다. 우리는 누런 장판지 위에 앉아 창밖을 보며 바람이 잠깐씩 이는 세상의 한켠에 있었고, 쇠물닭 한 마리가 물 위를 살살 헤엄쳐 나아가듯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강 선생은 막걸리를 30년 먹은 사람이라 막걸리 다룰 줄을 안다며 제주막걸리를 두 병씩 부어 노란 양은주전자에 채웠다.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전시회가 며칠 전에 끝난 참이라 축하의 말을 더할 때 낮달이 예뻤고, 그림만 하면 그림이 가늘어진다고, 이것저것 하며 어쩌다보니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은 그렇게 하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이번에 대구를 발칵 뒤집어 놓고 왔다며 구부정한 외로움이 환하고 맑게 큰 웃음을 지었다. 회색으로 내려앉은 천변의 도드라진 것과 오목한 곳에서 반사되는 빛이 다가오는 시늉만 하지 미동이 없더니 어느 순간 산야가 다색으로 변하며 금세 창문 가득 어둠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바깥이 캄캄하도록 술자리가 끝나지 않자 걱정이 된 부인이 작업실에 오셨으나 우리의 이야기는 좀체 줄지 않았다. 시는 시인이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고, 미술은 화가를 고립으로부터 지켜준다고, 정치와 자본의 거짓과 강요로 얼룩진 세상에서 자식같이 작품을 길러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야기하고, 창조하는 사람은 창조하되 인생의 길은 결국 만나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눴고, 예술가란 제 마음의 종을 칠 수 있어야 하며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작품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나는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귀덕화사'에서 정념과 죽음의 밀접함에 대해 또한 예술이란 결국 인간과 자유에 관한 문제와 겹치며 뒤섞여 있다는 생각을 곱씹었다. 그 증거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작품 그 자체일 것이다. 잘 만들어진 대구미술관 전시 도록을 취한 눈으로 뒤적이면서 귀가하는 나의 밤길은 자꾸만 옆으로 기울었다.

벌써 1월의 반이 지났다. 새해란 또 한 번의 기회가 온다는 뜻이며, 마르케스의 말을 변용해서 이야기한다면 어떠한 잘못이나 불행도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오늘은 '여기에' 산다는 '현실'이 내 삶에 더 아름다운 독립과 독창성의 새로운 바탕이 되기를 빌어도 흉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날이다. <시인>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8865 왼쪽숫자 입력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
오피니언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