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야만의 시대, 온 몸으로 비극 견딘 여성들
공선옥 신작 소설집 '은주의 영화'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19. 08. 30(금) 00:00
2년 전 5월 어느 날, 공선옥 작가가 한라도서관에서 열린 제주한국지역도서전 북 콘서트에 초청된 일이 있다. 강연 전, 광주에서 온 사회자가 5·18 이야길 꺼냈다. 마침 그 날이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아 계엄군에 맞섰던 마지막 시민군이 희생된 날이라며 그 기억을 나눴다. 제주의 4·3처럼, 5·18 역시 5월 18일 그 하루에만 닿아있는 게 아니란 걸 느꼈던 순간이었다.

공선옥 작가가 2010년부터 발표해온 8편을 묶어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 소설집 '은주의 영화'에도 5월이 있다. 폭력의 시대였고 여성들은 그 비극을 온 몸으로 통과했다.

표제작에는 1989년 봄에 작가가 보고 듣고 경험한 시간들이 흐른다. 체로 거른 듯 잊히지 않는 기억들로 작가는 그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선명하다고 적었다.

상희, 철규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취업준비생 은주가 카메라를 들고 광주에서 대구탕집을 하는 이모의 사연을 담으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모는 5·18 때 어떤 죽음을 목격하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은주는 이모의 말을 들으며 카메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어느새 카메라는 영매가 되어 죽은 사람을 불러낸다. 이모와 은주가 얽혀 있던 한 소년의 비극적인 죽음은 1989년 실제 있었던 조선대 학생 이철규의 의문사와 연결된다.

'은주의 영화' 속 이모처럼 폭력에 무방비한 여성은 다른 소설에도 드러난다.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의 언니는 버스 차장, 공장 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번 돈으로 집에 소를 사주지만 소는 병들어 죽고 그 역시 병원 신세를 진다. 엄마와 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어린 '나'는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다. 작가가 스무살을 향해 가던 무렵 '큰 개', '작은 개'들이 곳곳에서 '발광'을 했던 시절을 떠올린 '읍내의 개'에도 학대받는 여성들이 있다.

착취당하는 어머니의 삶이 세대가 지나도 계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순수한 사람', 전통적인 가족의 해체를 그려낸 '염소 가족', 평택 쌍용자동차 사태를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설운 사나이' 등도 이번 창작집에 실렸다. 야만의 시대가 남긴 약자의 아픔을 가로지르는 입담이 여전하다. 창비. 1만4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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