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신독(愼獨)의 안식처, 한라수목원
입력 : 2012. 01. 26(목) 00:00
나는 한라수목원을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집 뜨락 이상으로 좋아한다.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을 때나 복잡한 일상에서 머리를 식히고자 할 때에는 조용히 한라수목원을 찾아 나서곤 한다. 운동삼아 걸을 양이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급하게 걷거나 뛰어 가지만, 나는 주로 여유부리며 천천히 걷기를 택한다. 느림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나 자신과의 속삭임을 음미함이라 할까, 그렇게 조용히 수목원의 분위기 속으로 젖어들 때면 언제나 자연의 품속으로 포근히 안겨드는 느낌이다.

도심지에 이만한 숲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더 없는 행복이요, 크나큰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량한 공기의 공급처를 곁에 두고 사니 정말 복받은 삶을 그들은 얼마나 느끼며 살까?

산새들 지저귀는 소리, 흐르는 물소리, 귓불을 스쳐가는 잔잔한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온갖 수목들의 향연에 꽃내음 향취를 만끽하며 내밀의 행복을 맛볼 수 있으니 무엇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른다. 그러면서 걸음걸이는 흔들릴지라도 인생만은 똑바로 걸어가겠노라고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을 가치 있게 살다가 조그만 보람이라도 남기고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곧추세워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을 숨가쁘게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망각하고 살 때가 태반일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 그 일상에서 나 혼자 똑바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늘상 틀에 박힌 나날의 삶을 살아가지만 내가 내 모습을 바로 보지 못하고 비뚤게 걸어가는 시간속에 몰입해 있는 것은 아닌가?

날마다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은 내 모습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는 흐트러짐이 없이 잘 처신한다고 하지만 내 비어있는 구석을 일일이 지적해주는 멘토가 없으니 내 단점을 속절없이 지나치며 마냥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거리에 나선 뭇사람들도 그러려니 할 것이다. 또한 그들도 그럴 것이다. 겉옷을 고급 브랜드로 치장하고 걸쳐 입었어도 속옷마저 그렇게 고급으로 입고 다닐까. 고운 얼굴로 정형을 하고 휘황한 분식을 하였을지라도 속살 검은 이가 흰옷 입었다고 겉마저 그리 하얄까.

혼자 집에 있을 때는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행동해도 누가 엿보는 이 없으니 제멋대로 살면 어떠리 하고 자신가꾸기에 게을러도 누가 뭐라 할까마는, 그런 사람이 밖에 나와 뭇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정의의 사자처럼 아주 점잔을 뺀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삼가 행동하기를 몸에 배게 하라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살고자 함이다.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자기수양의 길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수목원을 걸어갈 때엔 늘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다듬는 길로 생각하며 걸어보고자 노력한다. 마음이 제대로 닦이지 않을 때는 다시 한 번 산의 등허리길을 돌고 또 돌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수양하는 정신으로 걷는다. 그리하여 돌아오는 길은 한층 발걸음도 가볍고 온 몸에 엔도르핀이 샘솟듯 생기가 넘쳐나곤 한다.

수목원길은 내 삶의 안식처요, 마음 기대는 언덕이다. <강관보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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