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우리가 계속 꾸어야 할 꿈
입력 : 2011. 12. 22(목) 00:00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점심 먹던 도중에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고는 잠시 멍해졌다. 다들 떠나는구나, 그도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김정일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다. 이미 1974년에 김일성 후계자로 낙점된 터였기에, 여성편력과 같은 그의 부정적인 정보들이 냉전시대의 우리에게 계속해서 제공되었다. 결국 그는 1994년에 최고 권력자 자리를 물려받고는 '선군정치(군부 우위 정치)'와 '강성대국론(사상·군사·경제대국 건설)'을 추구하며 '고난의 행군' 속에서 17년 동안 북한을 통치했다.

범박하게 보자면, 아버지 김일성에 비해 그는 다소 유연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김일성이 남쪽의 지도자 이승만·박정희와 끝없는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 서슬 퍼렇던 냉전체제를 이끌었다면, 김정일은 핵 문제 등으로 난관에 봉착하는 와중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화해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의 정상회담 직전에 급서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절박해진 경제적 상황을 타개하려는 몸부림에서 그랬던 것이기도 했지만, 그가 남쪽의 두 대통령과 차례로 정상회담을 가졌음은 크게 주목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당시에 그가 남한 사람들에게 보여준 언행은 김일성과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면모가 꽤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의 셋째아들이자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정은이 북의 새 통치자가 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제3세대 지도자의 탄생이다. 1983년생(1982년생 혹은 1984년생이라는 설도 있음)인 김정은은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 살이다. 남한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으로서 갓 출발했을 만한 연령이다.

나이만 갖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 나는 젊은 김정은이 김일성은 물론 김정일보다 더 유연한 사고를 지녔으리라고 믿는다. 그는 할아버지처럼 일제강점기 빨치산 투쟁을 거쳤거나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요, 소년기에 겪은 참혹한 전쟁의 상흔 속에 살았을 아버지와도 다르다. 김정은의 기억 속에 전쟁은 없다. 그는 완벽한 전후세대로, 앞선 세대와 경험이 판이하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에는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이 강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며,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광도 뚜렷하게 새겨져 있지 않을까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의 전언('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북한의 공업기술이 모자라서 전력부족이 심각한 상황임을 토로하며 울기도 했고, "유럽의 상점에는 먹을 것이 넘치는데 우리나라의 상점에만 먹을 것이 없다"고 탄식하기도 했다고 한다. 10대 후반에 2년 동안 스위스의 공립학교를 다녔던 그로서는 보고들은 바가 적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에겐 한계가 아주 많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기존 권력층을 넘어서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나는 김정일의 사망과 김정은의 권력 승계 소식을 들으며 박노해의 '꿈을 모두 함께 나눈다면'(1999)이라는 시의 한 부분을 떠올려 보았다. "난 요즘 잠자리에 누워 이런 꿈을 꾸곤 한다/우리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서 평양까지 마음껏 달리고/만주벌판으로 눈 덮인 시베리아로 유라시아 초원을 거쳐 빠리까지 가 닿아/거기서 다시 횡단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리는 꿈을 꾸곤 한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낙관적이라고 지청구할 분들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분들에게 박노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꿈을 혼자서 꾸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꿈을 모두 함께 나누어 꾸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꿈을 머리나 입으로만 꾼다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몸으로 자기 몫의 고통을 받아나가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꿈을 젊어서 한때 반짝 꾸고 말면 꿈에 지나지 않지만/생을 두고 끝까지 꾸어간다면 반드시 현실이 된다"

<김동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5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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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향기~ 01-09 09:36삭제


당나라당 후보들 명심하라~ 당나라당을 살려야하는 이유~

[최보식이 만난 사람]에서 퍼옴.


"神父들이 '강정 멸치젓' 팔아 기금 모아… 강정엔 멸치가 안 나는데"

15대째 강정마을에 산 토박이
"내가 海軍서 돈 받았다 퍼뜨려… 승용차에 호신장비 싣고 다녀"
喪服을 입고서 마을 돌아다녀
바다 밑 산호가 많다고 반대… 결국 세금 21억원 들여 조사
"국회의원쯤 되면 국가관이 있어야지. 야당은 그렇다 쳐도, 내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한나라당이다. 해군기지는 좌파세력이 타깃을 삼아온 상징적 사안이었다. 이런 대결에서 명색이 여당이 엿 바꿔먹는 식으로 해버렸다."

윤태정(57)씨의 말은 순화되지 않았다. 제주 강정포구에서 펜션을 하는 그는 해군기지를 신청했던 마을 이장이었다. 반대 측의 탄핵을 받아 이장 임기를 못 채웠지만 그는 계속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외부에서 온 시위대가 집으로 찾아와 술병 던지고 확성기로 떠들어댔다. 작년 여름에는 아예 장사를 못 했다. 이놈들은 혼자가 되면 가만히 있다. 하지만 셋만 모이면 내게 시비를 걸고 욕을 해댄다. 혹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승용차에 호신장비를 싣고 다닌다.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올해 해군기지 예산은 당초 1327억원이 편성됐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와 여당의 '협조'로 49억3000만원(4%)만 통과됐다. 2014년 완공은 어려워졌다. 이번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당이 되면 해군기지의 장래는 더 불투명해질 것이다.

―반대 측은 "해군기지는 끝났다"고 장담하고 있다.

"주민들도 당황해서 내게 전화를 많이 걸어왔다. '이러면 공사 끝 아니냐'고. 반대 측의 공사 방해로 집행하지 못한 작년 예산을 올해 사용하면 된다고 들었다. 지금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다만 명분과 상징성에서 타격을 본 것은 사실이다."

마을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 '불순세력 해군은 물러가라' 등의 깃발과 현수막이 빽빽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종교인이 상복(喪服)을 입은 채 삼보일배를 하고 있었다. '농성장 150m' 화살표를 따라가 보니, 가건물을 지어놓고 외지인 네댓 명이 반대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는 농성장 근처로 안 가려고 했다. "무엇이 겁나서 그러느냐?" 물으니, "저놈들을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남의 마을에서 두 달 가까이 상복 입고 돌아다니는 인간이 없나. 한때는 전문시위꾼들이 다 내려왔다. 밤이면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난장판을 벌였다. 자연생태계를 떠들던 놈들이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제멋대로 버렸다. 신부(神父)들이 돈을 대주니 '니나노판'이 된 것이다. 이런 광경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대체 마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됐다."

―신부들이 돈을 대다니?

"신부들이 '강정 멸치젓'이라고 팔아 투쟁 기금을 모았다. 여기는 멸치도 안 나는데. 10억원 이상 모아 도로변 입구에 집까지 지었다. 매일 해군기지 반대 미사를 한다. 성당마다 여기로 신도들을 보낸다. 내가 천주교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고는 도대체 성직자들이란 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붉은발말똥게를 살리자'는 현수막 구호처럼, 자연 생태계를 위한다는 것은 늘 호소력이 있다.

"제주도 어느 해변에도 붉은발말똥게가 서식한다. 이걸로 시끄럽게 하자 해군들이 우리 마을의 말똥게들을 잡아 옮겨놓았다. 저네들은 '해군기지가 들어설 바다 밑에 산호(珊瑚)가 많아서 안 된다'며 반대도 했다. 결국 국민세금 21억원을 들여 조사에 응했다. 안 나왔다. 그러고는 그만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찬성하던 주민들이 어떻게 그렇게 돌아섰는지 믿을 수 없다."

―같은 마을 안에서 반대 측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지금은 서로 말도 안 한다. 유치 결정(2007년 8월)이 된 뒤 민노총과 참여연대 사람 서너 명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얼마 안 넘어가더니 나쁜 말을 계속 퍼뜨리니 주민들이 확 넘어가더라. 대체 어떻게 교육시켰는지, 글도 잘 모르는 아줌마들이 무슨 법(法)을 그렇게 잘 아는지 원."

―반대 측에서는 유치신청 과정에서 하자가 있었다고 문제삼았던데.

"그놈들이 무슨 말을 못 만드나. 누차 이야기해왔다. 마을 향약(鄕約)에 주민 51명만 참석하면 총회 성원이 되게 되어 있다."

―주민이 몇 명인가?

"1500명인데, 총회에 참석을 잘 안 한다. 당시 130명이 참석했다. 마을회관에서 1시간 동안 회의해 신청 여부를 결정했다."

―선생은 여기서 얼마나 살았나?

"15대째 살고 있다."

―지금 와서 보니 풍광이 참 좋다. '올레길 7코스'가 여길 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아름답지 않은 동네가 어딨나. 해군기지를 하려는 땅은 '유원지 지구'로 20년 동안 묶여 있었던 곳이다. 논들이 띄엄띄엄 이어져 있고, 도로가 없는 맹지였다."

―마을 이장을 맡았을 때 굳이 해군기지 유치신청을 할 이유가 있었나?

"지역개발지원금이 1조5000억원이 된다. 우리 마을은 도로망이 안 좋아 낙후돼 있었다. 과거에 초등학교에는 학생 수가 250명까지 있었다. 지금은 80명도 안 된다. 작년에 입학생이 8명이라고 들었다. 밀감 농사만 지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처음 유치했을 때는 동네 유지들이 술 사주며 '마을 발전을 100년 앞당기게 됐다. 정말 고생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돌아서서 나를 매도하더라. "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발전은 되겠지만 강정마을의 본래 모습이 사라지지 않겠나?

"나도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주고받는 게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난개발이 될 리 있겠나. 1조5000억원의 지원금이면 우리 마을을 더 매력적으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조건 개발하지 말라면 서울에서도 아파트나 문화시설을 짓지 말아야 한다. 자기 가족은 제주시로 나가 살면서 여기에 집과 땅이 있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대 주민 수가 더 많았다고 들었는데.

"유치 결정 직후 외부세력이 들어와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해군기지를 짓고나면 공군 전투비행장도 들어와 마을이 없어진다' '군부대 근처에 술집이 생겨서 애비 없는 자식이 생긴다'고 했다. 찬성 주민들을 향해서는 '매향노(賣鄕奴)'라고 했다. 이렇게 계속 교육시키니까 결국 무너지더라. 어어어 하다가 넘어간 꼴이다."

―찬성하는 주민들을 규합해 대응해본 적은 없었나?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막 나서질 않는다. 저들처럼 얼굴에 철면(鐵面)을 깔면서 할 줄 모른다.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놓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저쪽에서는 시위 모금도 잘 걷히지만, 우리 추진위원회는 운영 경비가 없다. 해군기지 들어오면 좋고 안 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저네들처럼 집요하게 조직적으로 할 줄을 모른다."

―반대세력과 직접 부딪힌 적은 없었나?

"2007년 설명회장에 들어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일주일 살았다. 7명을 고발했는데, 다들 안 했다고 발뺌했다. 저네들은 돌아서면 거짓말했다."

―마을 이장을 언제 그만뒀나?

"이장 임기는 2년이다. 2007년 12월까지가 임기였다. 하지만 해군기지 유치 신청을 하고 난 뒤로 반대 측에서 탄핵을 했다. 그해 8월말로 그만뒀다."

―지금 선생이 맡고 있는 '해군기지추진위'는 언제 만들었나?

"내가 마을 이장을 할 때다. 당초 시의원을 지냈던 분께 맡아달라고 하니 안 하겠다고 했다. 마을 총회에서 내게 맡으라고 해서 받아들였다. 반대 측에서 거짓말로 기자회견을 열면, 내가 '그렇지 않다'고 반박회견을 하는 입장이 됐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이장을 그만뒀으면 손을 떼버리면 되지, 왜 여전히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나?

"이걸 하면서 인간적으로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 가족까지 욕을 먹고 있다.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만두면 찬성해온 주민들이 나를 배신자라고 욕할 게 아닌가. 내가 유치 신청을 꺼냈으니 물러설 수가 없게 된 거다. 10년만 지나면 우리 마을이 달라질 것이다. 그때는 평가해주지 않겠나."

―혹시 추진위원장을 맡아 개인적으로 다른 이득을 보는 게 있나?

"젠장할, 바로 반대 측에서 '해군에서 돈 받고서 저런다'고 퍼뜨렸다. 내가 돈 받고 마을을 팔아먹었다고 욕해대니, 주민들이 그렇게 믿을 것 아닌가. 이장 시절 자문위원을 맡았던 이들조차 나를 매도했다. 이 공사를 현대나 재벌그룹이 하면 몰라도, 어떻게 군이 돈을 주고 할 수 있겠나. 내가 겪어보니 군은 쓸 수 있는 예산도 별로 없더라. 해군기지 문제로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도 다 내 돈을 썼다."

―어쨌든 주민들에게 보상은 다 이뤄진 상태인가?

"2010년에 다 끝났다. 그게 충분했으니까 보상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충분하지 않았으면 '빼앗았다'고 떠들었겠지."

―선생은 얼마나 보상을 받았나?

"나는 받은 게 없다. 수용 토지가 있는 주민이나 해녀들이 보상을 받았다(모두 626억원)."

―지금 주민들 사이에서 찬반 비율은?

"반반쯤 될까. 주민들이 전부 거짓말만 들었으니까. 넘어갈 사람은 다 넘어갔다. 유치 직후에는 몇 명만 들어와 세뇌시키다가, 작년 3월부터 '평화버스'니 '평화비행기'니 하며 단체로 내려왔다. 집회 전날이면 우리 펜션에서는 아예 외부 손님을 안 받는다."

―정치인도 많이 내려왔다. 선생 입장에서는 누가 가장 보기 싫었나?

"정동영 의원이다. 여러 번 내려왔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대통령 후보까지 했는지, TV에 그 인간 낯짝만 나와도 채널을 돌려버린다."

―본인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할 텐데.

"착각 속에서 사니까. 그런 인간들이 마을 주민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북한에서 내려보낸 놈들이 아닌가 의심들 때도 있다."

―순수한 뜻도 있지 않겠나?

"나라 전체를 생각해봐도 국가 안보사업이 아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안보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며 추진했다. 그때는 내게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야 한다.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 이제 유치한 사람은 역적이 되고, 반대한 사람은 영웅이 됐다."

―선생은 "진해·부산에 해군기지가 들어서 마을이 망한 적이 있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주민들에게 그렇게 못 믿겠다면 한번 가보자고 했다. 해군의 협조를 받아 주민 30명씩 7차례나 해군기지를 시찰갔다. 샌디에이고와 하와이까지도 가봤다. 반대 측 주민도 네댓명 데리고 갔는데, 이들은 철조망 등을 찍어와 반대 선전을 하더라. 반대세력은 북한 편인지, 중국을 두둔하는 것인지."

―혹시 군(軍) 출신인가?

"육군을 사병으로 제대했다. 마을 이장을 맡고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해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반대 측에서는 선생을 '보수꼴통'이라고 하지 않겠나?

"과거에는 이렇게 확고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이들의 본색을 알면서 내가 그런 소릴 들어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숫자만 많았지, 줏대가 없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날은 포구의 바닷바람이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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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당은 죽어져야할 정당이지만~ 또 다른 대안이없기에...

당나라당을 살려야한다- 당나라당이 죽으면 저것들~ 온갖것들이 더 환장할터...

그 기고만장하는 꼴들을 또 볼것인가?

유채꽃향기~ 12-31 04:37삭제

제주사람들의 용공기질을 탓한다~

북한 김정일 추도 끝나자 강경돌변
南에 대북정책 전환… '압박''통미봉남' 노림수도
남북 强 대 强 구도될 듯… 北, 美와 대화국면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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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날짜 : 2011. 12.30. 16:30:48

북한 국방위원회가 30일 남측 정부를 향해 "리명박 역적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세밑 한반도 정세에날선 대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도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북한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국방위가 전례없이 강경한 대남노선을 천명하고 나온 것이다.

 특히 '김정은 체제'의 정책노선이 첫선을 보일 새해 1월1일 신년 공동사설 발표를 목전에 두고 나온 국방위 차원의 성명이라는 점에서 더욱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론 북한이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추도대회 다음 날에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실명 비난했다는 점에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내용과 성명의 주체 면에서 그 수위가 훨씬 높다는 점에 외교가는 주목하고 있다. 일단 북한 국방위의 이 같은 강경한 대남성명은 고도의 '계산된' 중층적 전략일것으로 추정된다.

 내부를 추스르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경제ㆍ식량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북한 특유의 '외교'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우선 의도적인 '남한 때리기'로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포석이 강해 보인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으로서는 대외적으로 강경하게 나갈 유인을 느끼고 있고 그 대상이 남측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문제한이 그 구실이 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한반도 정세의 '새판짜기' 틀 속에서 남한의 선택을 압박하기 위한 고강도의 전술이 깔려있다.

 김정일 사망 이후 대북정책 기조의 전환을 놓고 고심 중인 우리 정부에 대해 보다 더 근본적인 정책변화를 보이라는 압박으로도 보인다. 국방위 성명이 전체적인 대남 강경일색 속에서도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선언'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내년초 강성대국 건설 원년을 선포해야할 북한으로서는 남한으로부터 일정한 경제지원을 끌어내고 금강산 관광과 같은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이명박 정부와는 남북관계 개선이 어렵다고 보고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기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방위 성명이 남한을 강경하게 비난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미국과의 양자대화(북미 3차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보고있다.

 미국과의 '빅딜'을 통해 대규모 식량ㆍ경제지원을 이끌어내고 이를 6자회담의 틀 속에서 추인받는 구도로 가려는 수법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남측이 기존 대북정책 기조를 고수할 경우 남북관계 실패의 책임을 남측에전가하고 앞으로 남측을 소외시키는 형태의 북미 양자대화와 6자회담 재개 국면으로나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방위의 이 같은 강경한 입장표명이 과연 김정은 체제의 정책노선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국방위가 김정일 체제하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였으나 당 중앙군사위를 기반으로 하는 김정은 체제 하에서도 같은 위상과 역할을 수행할 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 체제가 지향할 정책 청사진의 정확한 밑그림은 내년 1월1일 신년 공동사설을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정일 유훈정치라는 큰 틀에서보면 국방위 성명의 기조에 따라 대남 강경론이 우세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남북관계와 6자회담을 두개의 축으로 하는 한반도 정세는 매우 미묘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남과 북이 조문문제를 고리로 신경전을 벌이고 이것이 강(强) 대 강(强)의 대치구도로 간다면 남북관계가 단절된 채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북관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한반도 정세 전반이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북측이 차기정부와 거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주기위한 공세를 펴거나 경우에 따라 도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여기에 6자회담 재개로 이어지는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배제된 채 북미에 의해 주도되는 외교적 고립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북 정책기조 전환을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형국이다. 한반도 주변 4강의 외교적 흐름에 발맞춰 대북 정책기조를 선회할 전략적 필요성도 있지만 집권 4년간 지켜온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특히 현시점에서 천안함.연평도 문제를 매듭짓지 않고 대북정책 기조를 전환한다면 내년 선거를 앞두고 핵심 보수층의 이탈과 반발을 감수해야 하는 정치적 위험성이 적지 않다. 대외적 흐름과 국내적 여론을 아우르는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달 2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될 대북 메시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정일이가 권력을 잡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중인 미군에게 도끼를 휘둘러 미군4명과 한국군 2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미군장교 2명은 현장에서 즉사하는 사건을 벌였듯이

아들 김정은도 2010년 3월26일 21:22 서해 백령도 연안 1마일 해상에서 초계임무중인 천안함이 북한의 잠수정에서 발사한 어뢰 공격을 받아 함정은 침몰하고 승조원 104명중 46명이 전사하는 대 참사를 자행했다

이는 김정일이 도끼만행으로 당과 군내에서 위상을 확보한 "미제타승(미군을 때려눕혔다) 투쟁업적"을 조작한것과 같은 맥락으로 3대세습을 위한 투쟁업적 조작을 위해 자행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84년생이 벌써 이런 만행을 자행한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북한의 위협은 김정일 보다 더 크다고 볼수있겠다
더군다나 2012년 강성대국 원년, 김정일 사망, 오랜 기근과 시장경제 붕괴 등 북한 내부의 수많은 난제를 풀기위해 어떠한 돌발행동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갑자기 완장차면 사람이 돌변하기 때문에 조심해야된다

제주사회에 용공분자 용의자들이 활개를치는것을 넘어서 장악을하고있다...
시골마을에서~ 국립대학 강의실에서~제주정론지 한라일보에서~

그래서 말한다~ 투표똑바로 하라고...

그래서 말한다~ 교수님 선생님들도 최소한의 반공시험 50점이상은 받아야?

제주도가 젤라도가되고~제주도가 대한민국정권교체?용공적화?본섬이 되는중이라고~

그중에 제일로위험한것들이 자라나는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저런 교수나부랭이들이다-

친북용공분자들의 특징을 보면 이렇다.

1. 북의 反인권적인 태도,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2.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군사훈련을 전쟁을 위한 책동으로 공격한다.

3. 북한의 비이성적인 행태로 인해 촉발된 문제를 미국의 군수산업자들이 부추긴다 공격한다.





이런걸 논단이라 하나 12-25 16:29삭제
북한인민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나 글구 6.25전쟁은 누구로 인해 동족 상잔의 피해를 받는가 당신이 당신 가족이 그런 고생을 껶었다면 이런 글 쓰겠는가 에라이 정말 밉네 한라 일보도 이런 글 쓰는 이를 올리는게 합당하다고 보는가 머 정은이가 잘할거라고 ...반성하시오
유채꽃향기~ 12-24 16:27삭제

북한 정권의 ‘후계자’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김정일 애도기간에 탈북 시도를 한 주민들에게 “삼족(三族)을 멸하라”고 지시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내부 소식통을 인용, 23일 보도했다.

이 방송에 따르면, 김정일 사망 소식이 공식 발표된 19일 양강도 혜산시에서 고모씨 부부와 10세 미만의 두 딸 등 일가족은 한국에 가기 위해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국경경비대에 체포됐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은은 대로(大怒)하며, 이들을 역적으로 규정하고 삼족을 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복수의 양강도 소식통이 전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저런 3대세습의 짐승같은것한테 희망을보고 같은꿈을꾸자고?

암약하고있는 대남공작원같은 간첩들이 해야할표현을 국립대학 교수라는사람입에서?

국정원사람들은 뭐하고 있는가... 이적행위가 따로없는데...

유채꽃향기~ 12-23 01:06삭제

그대지금 몽정의 늪에서 잠꼬대 하시는건가...

그대지금 3대세습의 앞길에 꽃가루 뿌리시는건가...

그대지금 다들 떠나는구나 그도 그렇게~ 하면서 무엇을 추억하시는건가...

아 노무현! 했던 그대 정말로 제정신으로 쓰는 목요논단이신가?

참말로 그대 철부지도 아니고 꼭이렇게 개판같은 논단으로

떨어진 노무현을 추억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유시민씨가 박노해시인에게 간곡히 한마디 하였다...

박노해시인 그입 다물라~

[목요논단]우리가 계속 꾸어야 할 꿈

여보시요? 우리가 왜 당신하고 계속 같은꿈을 꾸어야하는가?

당신지금 미쳤는가? 아니면 실성하신건가?

정말로 기가막힌 목요논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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