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탐라문화를 다시 사유하다
입력 : 2011. 10. 27(목) 00:00
옛 문헌과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고대 농경사회로부터 현대 초입에 이르도록 오곡(五穀)으로 손꼽는 쌀, 보리, 콩, 조, 기장은 밥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먹을거리의 기본이어서 농사도 당연히 이들 곡식 위주로 지었다.

시월은 결실의 계절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것도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추수감사제를 올리는 사직단(社稷壇)의 직(稷)은 직접적 의미로 기장을 일컫는데, 오곡으로 대변되는 농경은 나라백성 생활사의 근본이기도 하였다.

제주 섬에 농경의 시작점을 찍는 그 시기에 맞추어 탐라국이 일어났다는 설은 이제 정사로 인정되는 추세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탐라국건국 신화 중 벽랑국 세공주 도래' 편과 자청비 신화로 더 많이 알려진 '세경본풀이' 두 편 '이야기'는 제주농경사회의 근간을 똑 부러지도록 명백히 들여다볼 여지를 제공하는 귀한 신화이다.

물론 신화는 역사서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엮어내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간과한 인류의 문명사 중 소위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를 감칠맛 나는 '이야기'로 위장하여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수수께끼처럼 문제와 답을 품고 '말'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속성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탐라문화제(耽羅文化祭) 기간 중에 강문규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탐라국 건국 신화의 일부를 '재현, 신화의 내용을 형상화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체험프로그램으로 활용' 하도록 기획한 축제의 콘텐츠 중에 농협중앙회제주본부가 '2011 농업문화축제'를 삽입하고는 '선인들이 풍년을 기원하며 지냈던 풍년기원제'를 지냈다는 건 매우 의미 있는 구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농협중앙회제주지역본부에는 근대농경문화의 유물인 옛 농기구들이 잘 수집되어 의미 있게 전시된 작은 박물관이 있다. 일찍이 현 김상오 지역본부장이 혜안을 가지고 의욕적으로 마련해 놓은 일종의 제주농경사자료전시관이다. 그에다 누구에게나 개방하고 있어 제주의 옛 삶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 방문객이 있으면 안내하곤 한다.

정말로 농협중앙회제주지역본부는 이번 탐라문화제에서 제 할 일을 명료하게 해내었다.

조금도 흔쾌할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이즈음 제주에서 시월 한 때가 사뭇 흥겨웠음은 올해로 오십 회, 한 허리를 꺾은 탐라문화제가 우리 삶의 근본에다 멍석 깔아놓고 흥을 돋운 덕분이었다. 마을마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서로의 삶의 뿌리를 확인하는 축제의 현장은 보기에도 좋았다.

어쩔 수 없어 팍팍한 나날을 살다가도 즐겁고 신나게 신명을 돋우는 한 자리 놀고 나면 삶은 저도 모르는 새에 긍정적인 힘을 얻는다. 그래서 인류사회는 고대로부터 짬짬이 축제를 즐긴 듯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당을 열어놓고 즐기기만 하는 축제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나름대로 의미를 찾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게 축제 판이다.

이번 축제의 탐구성을 보며 언론은 '탐라문화의 정체성(正體性)을 찾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려는 일련의 노력들이다.' (한라일보 2011년 10월 8일자 사설)라고 평하였다. 이를 내년부터 열리게 될 '탐라대전'의 시발점으로 봐도 좋을 듯싶다. 탐라문화의 근본을 오늘에 알맞추어 되새기고 강화하되 도민이 하나 되어 신명이 일게 할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성공은 따 논 당상일 터이다.

농협중앙회제주지역본부의 농업문화축제 풍년기원제가 제주농업이 오곡 농경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어 식량자급자족으로 이어지면 더욱 금상첨화가 아닐까 염원한다. <한림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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