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우리 앞에 다가선 무서운 세상
입력 : 2011. 09. 22(목)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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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으로 고통 받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시급한 과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크게 높이고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일이지, 부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영리병원(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이 아닙니다."
이는 사회단체 활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 등으로 일하면서 이른바 '공안검사'로 이름을 떨쳤는가 하면, 국회의원(한나라당 소속)으로서도 강경보수 성향이 강했던 정형근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퇴임식 직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경향신문' 9월 15일치의 기고문과 '한겨레' 9월 16일치의 인터뷰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비율은 전체의 약 10%로, 그 비율이 80∼90%인 유럽 주요 나라는 물론 선진국 가운데 가장 민간의료 중심인 미국의 30%에도 크게 뒤진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이 들어서면 그나마 국민 건강을 보장하고 있는 건강보험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영리병원이 큰 수익을 안겨줄 것이라는 주장도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까지 했다. 외국인이 대여섯 달씩 머물며 관광과 휴양을 즐기는 태국과 우리나라는 여건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이 지적했듯이(정형근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할 사람은 없으리라!), 영리병원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일이다. 이상이 교수 외 5인의 공저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2008)'를 보면 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2005년 통계에서는 미국의 1인당 의료비는 우리나라의 5배, OECD 국가 평균의 3배 정도에 달한다. 그런데도 미국의 평균 수명은 77.8세로 영국·스웨덴·독일·프랑스는 물론 우리나라보다 짧다. 영아 사망률은 6.8%(1000명당)로 이들 나라에 비해 가장 높다. 의료비는 최대로 지출하면서도 수명은 짧고 영아 사망률이 높은 나라가 미국인데(오바마 대통령이 이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우리나라가 그런 미국의 의료 제도를 따라가려 하고 있으니 문제다.
특히 정부는 제주도 지역에 먼저 영리병원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 임명된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한정된 지역에 외국의료기관이나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하자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기서의 '한정된 지역'이란 제주도와 인천 송도 경제특구 등지를 말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그동안 특별자치도 관련 법안을 개정하려면 영리법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억지주장까지 서슴지 않아 왔는데, 이제 영리병원 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하려고 하는가? 의료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법률적 조건이 제주도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향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할 경우, 이는 곧 전국적 수준에서 의료민영화가 완성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방관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의료인이나 사회운동가들에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여기서 타협하고 물러서면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아프면 죽는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서 강조한 경구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점점 세상이 무서워진다. 해군기지에 이어 영리병원까지 들어선다면 제주섬은 무서운 세상과 아주 가까워지고 말리라.
<김동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 이사장이 지적했듯이(정형근을 '종북좌파'라고 매도할 사람은 없으리라!), 영리병원은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일이다. 이상이 교수 외 5인의 공저 '의료민영화 논쟁과 한국의료의 미래(2008)'를 보면 왜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2005년 통계에서는 미국의 1인당 의료비는 우리나라의 5배, OECD 국가 평균의 3배 정도에 달한다. 그런데도 미국의 평균 수명은 77.8세로 영국·스웨덴·독일·프랑스는 물론 우리나라보다 짧다. 영아 사망률은 6.8%(1000명당)로 이들 나라에 비해 가장 높다. 의료비는 최대로 지출하면서도 수명은 짧고 영아 사망률이 높은 나라가 미국인데(오바마 대통령이 이 제도를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가?), 우리나라가 그런 미국의 의료 제도를 따라가려 하고 있으니 문제다.
특히 정부는 제주도 지역에 먼저 영리병원을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 임명된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한정된 지역에 외국의료기관이나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하자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여기서의 '한정된 지역'이란 제주도와 인천 송도 경제특구 등지를 말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그동안 특별자치도 관련 법안을 개정하려면 영리법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식의 억지주장까지 서슴지 않아 왔는데, 이제 영리병원 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도입하려고 하는가? 의료 관련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도 의료민영화를 추진할 수 있는 유리한 법률적 조건이 제주도에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향후 정부가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할 경우, 이는 곧 전국적 수준에서 의료민영화가 완성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리병원 문제에 대해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방관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의료인이나 사회운동가들에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여기서 타협하고 물러서면 "죽어도 아프지 마라, 아프면 죽는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서 강조한 경구가 현실이 될 수 있다. 점점 세상이 무서워진다. 해군기지에 이어 영리병원까지 들어선다면 제주섬은 무서운 세상과 아주 가까워지고 말리라.
<김동윤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