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중문관광단지에 얽힌 땅의 역사
입력 : 2011. 08. 25(목) 00:00
"금반(今般) 국가방침에 의거 중문종합관광단지 개발에 따라 수용토지 매수를 개시하였기에 알려드립니다. … 뜻밖에 귀하의 토지가 관광단지로 수용케 되어 여러 가지로 애로가 있는 줄 사료되오나 적극 호응하는 뜻에서 토지매수에 협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죄송합니다."

1978년 3월 중문면장 명의로 중문마을 주민에게 발송된 일방적인 문투의 공문 내용이다. 죄송하다는 표현 속에는 위로부터의 지시인지라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는 굴종의식이 배어 있다. 제주도 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하여 1974년 수립한 '중문지구 관광종합개발계획'에 따라 1978년부터 본격화된 부지 매입의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 서류라고 하겠다. 전두환 대통령 때인 1985년 '제주도 특정지역 종합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 중문단지 개발 면적은 113만 평으로 확대되었다. 군사정권 시절 중문단지에 편입된 주민들의 사유지는 단 한 번의 협의도 없이 공시지가의 20∼30% 수준에서 강제 매각되었다. 그 시대는 그랬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1987년 6월 항쟁을 기점으로 사회의 민주화 분위기를 타면서 중문 마을에도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1987년 7월 중문 마을 주민 2000여 명이 '내 땅 지키기 대책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땅을 잃고 떠돌이 신세로 전락할 수 없다며 "주민들의 소득 보장과 개발이익 환원 없이는 토지 수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나 공권력과의 싸움을 견디지 못하고 토지는 헐값으로 강제 수용되었다. 이런 과정 끝에 1989년 중문골프장은 완공되었다.

1989년 8월 관광공사가 중문단지 동부지역을 대상으로 토지 매입에 나서기 시작하자 대포동 주민들은 '내 땅 지키기 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대응하였다. 주민들은 이전의 강제 수용 결과를 의식한 듯, "대토 확보, 매입가격의 현실화, 충분한 보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전 같으면 내걸기 힘든 주민들의 목소리였다. 1991년 12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시행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토지수용령은 사문화되었다.

중문단지 내에 골프장·호텔 등을 비롯하여 각종 입주업체의 매출액은 연간 2천억원을 상회했다. 관광공사는 원래 계획대로 1995년 이후 단지 동부지역(1.31㎢)에 대한 개발사업에 착수했으나 아직까지 사업 진척은 매우 부진하다. 최근 관광공사는 동부지역 개발을 접고 부지 매각을 통해 서귀포 제2관광단지 개발로 전환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중문단지에 대한 정리 수순에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관광공사는 중문단지에 대한 전면 포기 계획을 발표했다. 새 정부가 2008년 8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단지 개발의 중단, 골프장 및 관련 시설의 민간 매각에 나섰다. 중문골프장 매각액 1050억원, 단지 잔여토지 매각액 460억원 등 모두 1510억원 규모에 달한다. 공익을 추구해야 할 공사가 땅 장사를 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가 2009년 11월 400억원을 제시하며 인수 협상에 나섰지만 관광공사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문마을 주민들은 중문단지가 현재 미완성인데다, 사유지를 강제 수용했던 점을 감안해 관광공사가 책임을 질 것이며 단지 개발로 인한 이익 재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공사가 공익을 위해서 많은 수입을 올렸으면 주민에게 정당하게 환원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민간에 매각된다면 사업자에게는 엄청난 이익이겠지만, 공공 인프라의 기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중문관광단지 민간 매각을 위한 1차 공개경쟁입찰이 불발에 그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개발사업자 시행자변경 승인'을 절대 불허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주민정서에 걸맞은 정당한 행정행위이며 공유자산에 대한 공적인 판단이라고 많은 도민들은 생각할 것이다.

<박찬식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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