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칠순의 유학생과 나의 프랑스어 수업
입력 : 2026. 09. 30(수) 03:00
이소영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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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대학 신입생 시절, 프랑스어 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다. 당장 쓸모가 있거나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 좋아하는 프랑스 작가의 책을 원서로 읽어 보고 싶다는 어렴풋한 희망이 있었을 뿐이다.

저녁마다 버스를 타고 한참 시내를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차창 밖 도시의 야경 때문이었는지 새로운 말을 배우는 즐거움 때문이었는지 늘 설레는 기분이었다. 발음은 영원히 숙달하지 못하리란 걸 금세 깨달았고 문법도, 숫자 세는 법도 몹시 어려웠지만 학원 가는 길은 여전히 좋았다. 곧 이사를 하면서 프랑스어는 맛만 본 채 끝났지만, 그 길에서 느꼈던 희망찬 기분은 이따금 떠오른다.

프랑스어를 다시 꺼내 든 건 20년도 더 지나서다. 운전하며 유튜브 초급 강의를 듣고 스마트폰 앱으로 몇 분씩 공부하지만, 하루 몇 분으로는 실력이 느는 것 같지 않다. 그러던 중 나의 스승이기도 한 정신과 교수님이 올 초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떠나셨다. 평소 운동도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시는 분인데, 칠순을 맞아 일을 파트타임으로 줄이고 오랫동안 꿈꿔 오던 유학길에 오르신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은 학원에 갈 엄두도 못 내는 생활이지만 건강히,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프랑스어를 잘하게 되고 어학연수라는 것도 가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은 그 자체로 뇌에 꾸준한 운동이 된다. 여러 언어를 쓰는 사람은 한 언어를 선택하는 동시에 다른 언어를 억제하며 언어 체계를 끊임없이 조절하는데, 이러한 연습은 주의력 조절, 과제 전환 능력, 기억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유창하지 않더라도 새 언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이러한 능력을 키운다. 어휘를 외우고, 낯선 문법을 이해하고, 새로운 소리를 익히는 일이 기억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단련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뇌의 부피는 점점 줄어드는데, 언어를 배우는 사람은 언어 및 실행 기능과 관련된 영역의 부피가 더 크고 기능적 연결성도 더 높다고 한다. 이러한 이점이 쌓이면 '인지 예비력', 즉 뇌가 노화나 손상을 겪어도 다른 신경 경로를 활용해 기능을 유지하는 능력이 커진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한 언어만 쓰는 사람보다 치매 증상이 몇 년 늦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니 하루 몇 분의 프랑스어도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실력이 더디게 늘어도, 낯선 단어를 외우고 입에 붙지 않는 발음을 따라 하는 동안 뇌는 조금씩 새 길을 내고 있다. 스무 살의 나를 설레게 했던 것도 어쩌면 그 새 길이었는지 모른다.

외국어 공부의 쓸모를 꼭 시험 점수나 유창함으로만 따질 필요는 없다. 칠순에 유학길에 오른 스승처럼, 배움에 늦은 나이란 없다. 오늘도 운전대를 잡고 서툰 발음으로 프랑스어 문장을 따라 해 본다. <이소영 하버드대 매스제너럴브리검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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