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괴기반을 나누며-고성1리 마을 잔치
입력 : 2026. 09. 23(수) 02:00
심규호 hl@ihalla.com
[한라일보] 지난 일요일(20일)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마을 잔치가 열렸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며, 그간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주고받고, 노래와 춤을 즐기는 그야말로 잔치마당이었다. 마을의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니 세대와 양성의 차이를 떠나 마을공동체를 확인하는 자리이고, 마을과 관련된 논의거리를 담소하듯 주고받으니 기탄없는 공론의 장이며, 맛난 음식과 재미난 볼거리가 있으니 흥겨운 연희와 놀이의 마당이다.

잔치는 이른 새벽 마른둠비 만들기부터 시작되었다. 제주의 잔치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괴기반, 즉 도야지 괴기 석 점, 수에(순대) 한 점, 그리고 마른둠비 한 점이 담긴 음식을 두루 나누기 위한 준비다. 둠비는 고성리 마을 강춘자 삼촌이 전통 제조법에 따라 만들었다. 허나 콩을 수확하고 가루를 내며, 장작불을 지피고 간수를 응고시켜 무거운 쇳덩이로 눌러 물기를 빼는 전 과정 내내 마을 사람들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이는 공동 작업이니, 이 또한 수눌음이 아니겠는가! 부녀회가 정성으로 준비한 잔치국수 또한 그러하다.

항파두리 토성마을 고성리는 1,2리로 구분된다. 1리는 흔히 본동이라고 부르는 본리(本里)와 보로미 마을, 그리고 평화로 가까운 곳에 자리한 타운하우스 우베르 힐을 모두 포함한다. 보로미 마을은 다시 아파트와 전원주택 지역으로 나뉜다. 며칠 전 본리 이장의 주선으로 보로미 마을과 타운하우스 우베르 힐 대표자들이 함께 모였다. 서로 소개하고, 마을 현안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인 것 같네요."

지난 20일 열린 고성1리 마을 잔치에서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강춘자 삼촌의 마른둠비 시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성1리에 속한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마을을 뭐라고 지칭할까? 고성1리? 보로미 마을? 우베르 힐?'

마을은 지역 정체성의 토대이다. 부연하면, 마을 나름의 역사와 축적된 유산, 공동체 의식, 상호 부조의 의리, 권리와 책임의 분담의식 등이 계승,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제주 정신, 제주 정체성이 확립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里) 단위의 마을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고민이 깊다. 이주민은 늘어나고 선주민은 줄어들어 마을의 정체성을 운운하기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며, 양자 간의 암묵적 갈등이 잠재한다. 아니 어쩌면 상호 무관심으로 교류조차 없으니 '데면데면'하여 갈등조차 생기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알가름, 웃가름으로 같은 동네에 살면서 서로에게 무심한데 마을의 정체성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공동체 의식이 어찌 생기겠는가?

하여 이번 고성1리 마을잔치는 보로미, 우베르 힐의 사람들도 함께 참가하는 큰 잔치라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다. 그런 까닭에 마을에서 처음으로 제주두루나눔 풍물패의 비나리와 지신밟기가 마을의 안녕과 더불어 참된 마을공동체의 흥성을 북돋아주었으리라 믿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사)제주문화포럼이 주관하는 '2026 지역인문실천 지역답게'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마을 잔치는 제주 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보전하고, '마을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문적 모색과 실천'을 도모하는 자리였다. 이는 특히 선주민과 이주민 스스로 상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위한 하나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심규호 제주문화포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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