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마티 슈프림] 꿈의 자격
입력 : 2026. 07. 27(월) 03:00
진명현 hl@ihalla.com
가가

영화 '마티 슈프림'.
[한라일보] 착한 사람은 칭찬 받지만 잘난 사람은 칭송 받는다. 여기 칭찬 정도로는 손톱의 때 만큼도 만족이 안되는 한 인간이 있다. 그는 계급과 위치, 정도면에서 최고의(supreme)대우와 대접을 받기를 꿈 꾸는 이다. 아니 세상이 나를 칭송할 것이라 확신하는 이다. 전도유망한 탁구선수인 마티 마우저(티모시 샬라메)는 미국 국가대표로 국제 경기에 출전할 만큼 뛰어난 실력은 가졌다. 그는 아마도 어린 시절 받았던 재능에 대한 칭찬을 동력으로 삼아 성장한 인물일 것으로 짐작된다. 어린 마티에게 탁구 신동이라는 칭찬은 분명 그의 삶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좋은 에너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선명하던 눈빛의 총기가 광기로 변한 시점은 언제부터 였을까. 눈 앞의 공을 뚫어지라 바라보던 소년이 불투명한 먼 미래를 향해 허우적거리기 시작한 순간은 대체 언제 그의 삶에 끼어든 것일까. 영화 <마티 슈프림>이 끝나자마자 궁금했던 것은 마티의 어린시절이었다. 얘야,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니? 너겠지, 아마도 너의 모든 것들이었겠지.
조시 새프디 감독의 영화 <마티 슈프림>은 미워하기 딱 좋은 인물 마티 마우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아니 내세웠다기보다는 마티 마우저가 먼저 모든 것의 앞으로 자진해서 나와 있다고 말 하는 것이 맞겠다. 낭중지추에 머무르기엔 그의 주머니 안에 든 송곳은 너무 크고 험한 맹수의 송곳니에 가까운 것이라 마티는 주저 없이 자신의 욕망을 꺼내 의치처럼 끼고 휘두른다. 그래서일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거짓 아니면 무기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임기응변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무대로 쓰는 이에게 워라벨이란 게 있을 수가 없기에 그는 자기 앞의 생을 대체로 막 대하는 이다. 이 무대가 끝나면 다른 무대가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 마티에게 삶의 장들은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경쾌하게 펄럭인다. 그렇게 꿈 꾸던 소년의 하얀 공도 어느새 오렌지빛 성공의 욕망으로 뚜렷하게 발색한다.
<마티 슈프림>은 이를테면 관객에게 이 영화와 손절할 순간이 언제일까를 내내 궁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시바삐 이 영화와 시작된 인연을 끝내고 싶다는 관객의 자유의지가 기행을 일삼는 안티 히어로의 행보를 지켜보는 관전의 쾌감과 충돌하며 이별의 시점이 지연된다. 러닝타임 2시간 반 동안 내내 달리는 주인공 마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의 경험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쉼 없이 롤러코스터를 반복해서 타는 타인의 폭주를 지켜보는 이상한 희열이 <마티 슈프림>안에 있는 것이다. 눈 앞의 성공과 그 성공을 토대로 한 또 다른 성공 밖에 없는 삶, 흙수저로 태어난 이의 금빛을 향한 일직선의 욕망 레이스, 자신 외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지독하고 유독한 무신경함과 정규교육과정에서 윤리라는 과목을 스스로 도려낸 듯 어떤 깊은 고민도 후회도 없는 그릇된 선택들까지 마티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다. 너무 투명해서 눈이 다 시릴 정도로 야망캐인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언제나 오랑캐가 될 수 있는 자. 친구로 둬서도 적으로 둬서도 절대 안 될 존재. 그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내 삶에 득인 존재가 마티 슈프림을 꿈 꾸는 마티 마우저다.
보는 내내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나는 이 미워하기 좋은 마티를 보고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그와 엮인 지인이었다면 당연히 그를 미워했겠지만 아니 저주까지도 갔겠지만 관객으로 거리감을 두고 볼 때는 기행과 폭주를 일삼는 이 청년이 싫지만은 않았다. 성공의 모양도, 색깔도 정해두지 않은 채 달리는 그의 질주가 이상하게 측은했고 격파로 입은 내상을 돌보지 않은 채 돌파의 가능성만을 염두에 둔 이가 안타깝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욕망을 재단할 자격이 내게 조금도 있지 않음을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티를 단정하고 규정한 내 생각들이 과연 마티 마우저라는 빙산의 일각이나 될까. 그게 비단 영화 속 마티 뿐일까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마티의 꿈은 그저 세속적인 욕망일 뿐일까. 누군가의 꿈에도 등급이 있을까, 각각의 꿈에는 자격이 존재할까. 누구나 수긍할 만한, 누구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무해한 욕망만이 올바른 꿈이라고 과연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조시 새프디 감독의 영화 <마티 슈프림>은 미워하기 딱 좋은 인물 마티 마우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아니 내세웠다기보다는 마티 마우저가 먼저 모든 것의 앞으로 자진해서 나와 있다고 말 하는 것이 맞겠다. 낭중지추에 머무르기엔 그의 주머니 안에 든 송곳은 너무 크고 험한 맹수의 송곳니에 가까운 것이라 마티는 주저 없이 자신의 욕망을 꺼내 의치처럼 끼고 휘두른다. 그래서일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은 거짓 아니면 무기가 된다. 이것은 단순히 임기응변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통째로 무대로 쓰는 이에게 워라벨이란 게 있을 수가 없기에 그는 자기 앞의 생을 대체로 막 대하는 이다. 이 무대가 끝나면 다른 무대가 있다고 철썩같이 믿는 마티에게 삶의 장들은 이상할 정도로 가볍고 경쾌하게 펄럭인다. 그렇게 꿈 꾸던 소년의 하얀 공도 어느새 오렌지빛 성공의 욕망으로 뚜렷하게 발색한다.
<마티 슈프림>은 이를테면 관객에게 이 영화와 손절할 순간이 언제일까를 내내 궁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한시바삐 이 영화와 시작된 인연을 끝내고 싶다는 관객의 자유의지가 기행을 일삼는 안티 히어로의 행보를 지켜보는 관전의 쾌감과 충돌하며 이별의 시점이 지연된다. 러닝타임 2시간 반 동안 내내 달리는 주인공 마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진맥진의 경험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쉼 없이 롤러코스터를 반복해서 타는 타인의 폭주를 지켜보는 이상한 희열이 <마티 슈프림>안에 있는 것이다. 눈 앞의 성공과 그 성공을 토대로 한 또 다른 성공 밖에 없는 삶, 흙수저로 태어난 이의 금빛을 향한 일직선의 욕망 레이스, 자신 외에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지독하고 유독한 무신경함과 정규교육과정에서 윤리라는 과목을 스스로 도려낸 듯 어떤 깊은 고민도 후회도 없는 그릇된 선택들까지 마티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은 이렇다. 너무 투명해서 눈이 다 시릴 정도로 야망캐인 동시에 누군가의 삶에 언제나 오랑캐가 될 수 있는 자. 친구로 둬서도 적으로 둬서도 절대 안 될 존재. 그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내 삶에 득인 존재가 마티 슈프림을 꿈 꾸는 마티 마우저다.
![]() |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