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경의 건강&생활] 빛과 어둠의 무늬
입력 : 2026. 05. 06(수) 02:00
신윤경 hl@ihalla.com
[한라일보] 우리의 애정은 잘난 것, 빛나는 것을 향한다. 자신에게도 타자에게도. 무언가 비어있다. 어딘가 불안하고 공허하다.

친밀한 사이란 서로의 빛뿐 아니라 그림자와의 대면을 통과한 관계다. 빛과 그림자, 겉과 속이 부딪치며 이전의 내가 허물어지고 다시 정렬되는 시간이다. 고집스럽게 붙들고 있던 내가 무너지는데 도리어 기쁘고 편안하다. 어떤 친밀함은 과정 없이 불쑥 오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와 너, 빛과 그림자의 구분 자체가 사라지며 하나로 느껴지는 환희의 섬광이다. 하지만 섬광은 관계가 아니다. 친밀한 관계는 결국 그림자와의 대면을 거친다. 자기 안의 어둠을 보지 않는 이는 그것을 타자에게 덧씌운다. 그는 자신과도 타자와도 친밀할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친밀함은 하찮은 것 혹은 이기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어떤 목적에도 종속되지 않은 채 자신을 그리고 누군가를 그저 만나고 사귀는 일만큼 선량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도리어 이것 없이는 소외요 도구적 삶이 아닌가.

삶은 각자의 빛과 어둠으로 고유한 무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빛과 어둠은 한 사건의 두 얼굴이다. 낮과 밤처럼. 삶과 죽음도 그러하다. 우리는 빛만이 아니라 어둠으로도, 삶만이 아니라 죽음으로도 타자에 닿고 세상에 기여한다.

타인의 빛에 이끌리는 마음은 호감이나 동경이다. 사랑은 다른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의 어둠에 닿을 때, 깊은 곳에 웅크린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 호감과 동경이-때로는 무심함이나 거부감이-사랑으로 건너간다. 그의 어둠 곁에서 함께 떨리고 아프다. 이는 자신도 그도 쓸모의 가치 너머에서 만날 때 가능하다. 쓸모에 갇힌 시선은 빛만을 추구한다. 갈 곳 잃은 어둠은 후미진 구석에, 지하에 쌓인다.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은 감동이 아니라 현기증을 일으킨다.

어둠과 죽음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이를 수용하는 자리에서 나와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보다 친밀하고 깊어진다. 세상은 모든 것들의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이 어우러져 짜인 한 폭의 움직이는 무늬이며, 이 어우러짐이 조화이고 온전함이다. 우리 모두는 어둠을 품은 빛으로의-어쩌면 빛을 품은 어둠으로의-여정에 있다. 살면서 동시에 죽어간다.

방탄소년단과 악동뮤지션의 새 앨범, 빛만으로는 인간이 구원될 수 없다고 말하는 최근 드라마는 어둠과 죽음을 배제하는 시대에 대한 응답이다. 어둠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기쁨과 슬픔을 하나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껴안자는 노래들과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각기 다른 형식으로 같은 곳을 가리킨다.

인공지능은 잠도 꿈도 감정도 무의식도 죽음도 없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계산하고 추론하고 생산할 뿐, 쓸모의 영역에 머문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쓸모 너머에서 존재하는가. 쓸모 너머로 연결되어 있는가. 가능성은 거기 있을지 모른다. <신윤경 봄정신의학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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