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희의 백록담] 107년 전 그날을 기리는 어떤 기념사
입력 : 2025. 10. 27(월) 01:30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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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한 달 전쯤 서귀포시 중문중학교 운동장에 있었다. 지난 9월 28일 그곳에서 제주도와 중문청년회의소가 마련한 '107주기 무오 법정사 항일항쟁 기념식'이 열렸다. 더운 날씨였는데도 흰색 두루마기를 덧입은 고령의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킨 채 어린 세대들이 독립운동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행사장 무대 위에서 펼친 기념 공연에 몰입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그날의 장면을 불러낸 건 오영훈 도지사의 기념사 때문이다. 이날 5분여 분량의 기념사에서 오 지사는 도정의 우주 산업을 꺼냈다. 그는 "조국의 독립을 열망했던 선열들의 외침, 그분들의 함성을 오늘에 이어 더욱 더 평화롭고 번영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념사를 하면서 그 일환으로 서귀포시 도순동의 "무오 법정사 터 인근 옛 탐라대학교 하원테크노캠퍼스 부지에 한화우주센터가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원테크노캠퍼스를 중심으로 민간 우주 산업이 성장할 것이라며 제주도와 우주항공청이 맺은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개발 사업 업무 협약, 항공우주 분야 협약형 특성화고로 지정된 한림공고 이야기 등도 덧붙였다.
107주년 기념일이 가까워질 무렵 법정사 항일운동의 위상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한 역사 교과서 등재, 제주도 기념물인 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의 국가 사적 승격 등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된 터라 그와 관련한 제주도의 의사를 비칠까 싶었으나 기념사는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개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듯한 내용이었다. 1919년 3·1만세운동보다 5개월 앞서 1918년 10월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의 의미만을 기념사 안에 넣는 것으론 도민의 마음에 닿을 메시지가 약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기념사 중에 운동장 한편의 관람석에서 누군가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오 지사는 지난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7주년 4·3희생자추념식 인사말에서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과거사 극복의 모델"이 된 제주4·3정신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며 탄소 없는 섬 제주, 에너지 대전환 가속화, 우주 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 이른바 '미래 산업'들이 구호처럼 퍼지는 말들을 말미에 배치했다. 이때도 뒷소리가 났다.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이 내놓은 10대 핵심 공약의 앞줄에 자리한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상장기업 20개 육성 유치 등은 현재 임기 내 실현을 보장하지 못할 상황이다. 혹자는 오 지사의 자화자찬식 인사말 배경을 거기에서 찾는다.
미국의 선출직 정치인 출신 브라이언 C. 해거티가 쓴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에는 '성공하는 정치인의 10가지 습관' 중 하나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 마라'를 꼽았다. 책의 끄트머리엔 이런 당부도 있다. "정치 경력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은 처음 저지른 잘못 때문이 아니다. 그런 잘못을 덮고자 하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데서 당신의 정치 경력이 종결된다." <진선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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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주년 기념일이 가까워질 무렵 법정사 항일운동의 위상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한 역사 교과서 등재, 제주도 기념물인 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의 국가 사적 승격 등이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된 터라 그와 관련한 제주도의 의사를 비칠까 싶었으나 기념사는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개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듯한 내용이었다. 1919년 3·1만세운동보다 5개월 앞서 1918년 10월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의 의미만을 기념사 안에 넣는 것으론 도민의 마음에 닿을 메시지가 약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기념사 중에 운동장 한편의 관람석에서 누군가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오 지사는 지난 4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7주년 4·3희생자추념식 인사말에서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과거사 극복의 모델"이 된 제주4·3정신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다며 탄소 없는 섬 제주, 에너지 대전환 가속화, 우주 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 이른바 '미래 산업'들이 구호처럼 퍼지는 말들을 말미에 배치했다. 이때도 뒷소리가 났다.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이 내놓은 10대 핵심 공약의 앞줄에 자리한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상장기업 20개 육성 유치 등은 현재 임기 내 실현을 보장하지 못할 상황이다. 혹자는 오 지사의 자화자찬식 인사말 배경을 거기에서 찾는다.
미국의 선출직 정치인 출신 브라이언 C. 해거티가 쓴 '괜찮은 정치인 되는 법'에는 '성공하는 정치인의 10가지 습관' 중 하나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 마라'를 꼽았다. 책의 끄트머리엔 이런 당부도 있다. "정치 경력의 종말을 가져오는 것은 처음 저지른 잘못 때문이 아니다. 그런 잘못을 덮고자 하거나 진실을 말하지 않는 데서 당신의 정치 경력이 종결된다." <진선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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