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선의 하루를 시작하며] 버틴다는 건, 누군가 덕분이라는 뜻이다
입력 : 2025. 10. 22(수) 00:0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한라일보] 또래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있었다. 겉으로는 친구 관계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그 뒤엔 가정의 어려움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이는 오랫동안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못했고, 주변에서도 그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학교 안팎의 교직원과 지역이 함께 아이의 어려움을 살피고 지원하는 '학생맞춤통합지원'을 통해, 여러 교직원이 연결되고 보호자 설득이 이루어졌다. 학교 뿐 아니라 경찰과 상담소까지 손을 잡으며 아이를 둘러싼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와 가정, 지역은 아이가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학교에서 마주하는 어려움은 대부분 겉으로 드러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조용히 쌓인 침묵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숨기고, 그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이 곁의 어른들이다. 담임교사, 비교과 교사, 관리자 등 각자의 자리에서 관찰과 대응이 이루어진다. 특히 규모가 작은 학교가 많고 인력이 한정된 제주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함께 맡는 일이 잦다. 그래서 '누가 먼저 신호를 발견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발견이 끊기지 않도록 함께 이어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돌아보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쪽이 아이만은 아니다. 아이 곁에서 애쓰는 교직원, 그 뒤에서 행정 지원을 맡고 있는 교육지원청 실무자도 같은 부담을 짊어진다. 한 건의 사례 뒤엔 수차례의 전화와 회의, 기관 간 조율이 숨어 있다. 때로는 "어디까지가 내 역할일까"를 스스로 묻게 된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해 한 걸음씩 버텨온 시간이 오늘의 학생맞춤통합지원을 만들었다.

제주에서 학생맞춤통합지원이 사람 중심으로 움직여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로 얼굴을 알고, 상황을 공유하며, 필요한 순간에 빠르게 연결할 수 있는 지역의 특성은 분명한 강점이었다. 관계가 제도보다 먼저 작동했고, 그 덕에 지켜낸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에 기대는 구조는 담당자가 바뀌면 처음으로 돌아갈 위험도 안고 있다. 그래서 지금, 잘해왔기 때문에 더 점검해야 한다.

내년 3월이면 학생맞춤통합지원법이 전면 시행된다. 법 시행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화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관계 중심 경험이 사람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구조로 남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을 제도화하고 체계화한다면, 지금의 버팀은 일시적 노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안전망'이 될 것이다.

얼마 전, 그 아이가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저를 위로해줬어요. 다들 잘못했다고만 했는데, 얼마나 힘드냐고 해주셔서 고마웠어요." 말을 잇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나도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제주는 사람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 그 힘이 제도 속에서도 이어지도록 함께 지켜가야 한다. 사람의 온기로 시작된 이 길이, 앞으로는 제도의 품 안에서 더 단단히 이어지길 바란다. <오지선 서귀포시교육지원청 교육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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