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정의 목요담론] 문화도시 제주에서 근현대시기의 유산이란
입력 : 2024. 02. 22(목) 00:00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한라일보] 지난달 발표된 제주관광동향 보고서를 보면, 제주여행지 키워드는 한라산영실코스, 성산일출봉, 사려니숲길이다. 가장 하고 싶은 활동도 자연경관 감상, 식도락, 트레킹 순서로 나타났다. 이미 제주관광에서 자연경관 감상이 제주여행 선택 1순위가 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1970~80년대 외지인이 바라보았던 제주는 신혼여행의 최적지였다. 자연경관과 함께 제주만이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언어와 문화로 주목받는 곳이기도 했다. 2007년 세계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제주는 더 이상 문화관광이 아닌, 자연관광의 메카가 된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는 제주특별법에 문화예술의 섬으로 제도화되어 있고, 법정문화도시가 있는 명실상부한 문화를 품은 섬이다.

제주 섬은 수만년전부터 고유한 생활문화를 만들어 왔다. 지금도 중산간, 해안가 할 것 없이 곳곳을 거닐다 보면 선사시대 유적부터 근현대까지 육지와는 다른 제주다움이 확인된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제주에 파견된 목민관이나 유배인들의 기록인 읍지, 문집, 기행문, 마애명 등에서 제주인들의 성향, 생활방식, 음식문화, 자연경관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는 이런 기록에서 제주 고유한 특성을 찾았다면, 100여년 남짓한 근현대시기의 제주문화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근현대시기의 문화경관을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다. 육지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문화경관의 파괴가 가장 큰 이유라면, 제주는 4·3사건으로 인한 중산간 문화의 붕괴와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맞물린 생활양식의 전면적 개선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후에도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근현대유산들을 쉽게 훼손시켜 사라지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것도 원인이 되겠다.

제주 근현대시기는 장구한 제주 역사에서 0.1%도 못 미치는 시간이다.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 문화도시 제주를 만드는 데에 따른 기여도는 무시할 수 없다.

며칠 전 안덕면 옛 상천분교 철거 계획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상천분교는 4·3사건으로 소개된 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마을 아이들의 교실로 세워졌다. 즉 마을 재건의 역사와 함께해 온 중요한 교육시설이다.

이방인인 볼 때 사소한 작은 건물 일지라도 상천리주민들에게는 그들의 학교이고, 추억이고, 공공의 재산이었다. 그리고 당시 십시일반의 교육열로 아이들을 교육한 전당이라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이 내놓은 부지에 원조를 받아 주민들이 만든 교사(校舍)를 교육행정은 교육청 부지 내 노후 건물이라는 이유로 멸실권을 행사하였다. 다행히 주민과 행정 간 활용방안 논의로 일 단락은 됐지만 많은 아쉬움을 주는 기사였다.

이처럼 비록 소소해 보일 수 있으나 지역주민들의 정신문화로서 콘텐츠를 이해하고, 근현대시기의 문화지표로 바라본다면, 이 시기에 조성된 유무형의 유산들은 분명 허투루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오수정 제주여성가족연구원 경영지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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