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장소의 기억 지키는 작고 낮고 느린 건축
구마 겐고의 '… 건축을 말하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6. 18(금) 00:00
건축가 구마 겐고는 문학과 음악, 건축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싶어 책을 쓰거나 음악을 만든다면, 건축은 눈앞의 대상에 대해 무엇인가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눈앞의 상황에 맞서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나가는 것은 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생사와 관련된 절실한 행동 원리다.

안도 다다오 등을 잇는 일본의 4세대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로 원제는 '구마 겐고가 쓴 구마 겐고'다. 도쿄대 건축학과 교수인 구마 겐고는 일본 건축의 한 축을 받치고 있는 이로 서귀포(제주아트빌라스)에도 둥근 제주 오름을 형상화한 그의 설계 작품이 있다.

이 책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쓰여졌다. 구마 겐고는 당시 "건축이 이렇게 나약한 것인가? 인간이 이렇게 나약한 존재였던가?"라는 생각이 들며 미래가 닫혀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내일의 문제보다는 자신이 태어난 장소, 자신을 키워준 장소를 떠올렸다. 장소에 물든 여러 가지 추억, 장소 위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우리를 격려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고, 낮고, 느림을 추구하는 그의 건축 철학에는 어떻게 하면 장소를 지키면서 그곳에 물건을 만들거나 디자인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일본 안팎에서 펼친 건축 작업에는 조용히 존재하는 장소를 지켜보는 건축가 구마 겐고가 있었다.

그는 나무, 대나무, 종이, 세라믹, 천 등 약한 소재를 구조체로 택해왔다. 콘크리트는 일단 굳어버리면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무겁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 재사용을 할 수 없다며 좀처럼 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목조건축은 언제든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편안한 여유로움을 지녔다고 했다. 누구나 건설과 해체에 참여할 수 있는 이 같은 방식을 그는 '궁극적인 데모크라시 건축'이라고 칭했다. 이정환 옮김. 나무생각. 1만5800원.

진선희기자
주요기사더보기

기사 목록

한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