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태생적 슬로푸드 빵으로 꿈꾸는 생태적 삶
이성규의 '밀밭에서 빵을 굽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입력 : 2021. 05. 21(금) 00:00
2016년 12월 초였다. 터널 설계 연구원, 전략기획팀 과장, 해외 영업팀 이사 등을 거쳐온 그는 그때 자신의 든든한 뒷배였던 직책과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조그만 빵집을 열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들은 회사 대표는 그에게 5년만 더 함께 일하자며 한마디를 던졌다. "그깟 빵집 내가 하나 차려줄게. 5년 후에." 하지만 그는 사직서를 냈고 직접 '그깟 빵집' 운영에 나섰다.

이성규의 '밀밭에서 빵을 굽다'는 그 사연을 담고 있는 에세이다. 왜 하필 빵집이었는지, 어떻게 빵집을 열었는지, 지금은 어떤 빵을 만들고 있는지를 풀어놨다.

그를 빵집으로 이끈 건 마이클 폴란이 쓴 '요리를 욕망하다'와의 만남이었다. 그 책은 건강한 빵에 대한 그의 관심을 키웠고 첫 빵에 도전하며 밀과 밀가루 탐구를 향한 걸음을 떼어놓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빵집 문을 열었지만 생각보다 운영이 어려웠다. 매출은 기대치에 못 미쳤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장시간의 노동 또한 만만치 않았다.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돌아오는 건 적었다. 새로운 돌파구로 모색한 일이 '우리밀 베이킹 연구소'란 수식어를 단 '더베이킹랩'을 세운 거였다. 더베이킹랩은 우리밀로 굽는 빵에 대해 더 공부하고 그 결과물을 공유하려는 공간으로 꾸려졌다.

빵은 태생적으로 슬로푸드였고 먹으면 속도 편했다. 베이커가 직접 배양한 효모와 유산균들이 가득한 사워도우 스타터(천연발효종)를 반죽에 첨가해 장시간 천천히 발효시켜 굽던 음식이었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슬로푸드를 원한다는 그는 빵을 통해 인생의 지평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밀 농사를 짓는 농부를 알게 되고 농사의 토대인 흙을 살리는 법을 배웠다.

그의 작은 밀밭엔 올해도 고대밀과 호밀이 자라고 있다. 이전에도 그랬듯, 그는 그 밀을 베고 잘 묶어 말린 뒤 알곡을 털어내 제분기로 가루를 빻아 빵을 구워낼 것이다. 밀과 빵은 건강한 생태계를 꿈꾸게 하고 있다. 인문공간. 1만7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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