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觀/ 그날의 태주] 소문의 낙원
입력 : 2026. 10. 19(월) 00:00수정 : 2026. 10. 20(화) 18:53
진명현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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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날의 태주'.
[한라일보] '너는 그런 사람이야' 라고 단정 지어지는 순간은 늘 등 뒤에서 온다. 어느 한 타인의 입에서 방귀처럼 터져 나온 말들이 어느덧 무리의 유희가 되고 누군가를 몽땅 적실 폭우를 머금은 먹구름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대비도 없이 홀딱 젖은 이에게 건네지는 우산은 없다. 걱정을 가장한 음침한 요설들이 입 밖으로 나오면 겉잡을 수 없이 흘러 넘치지만 발원지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거 참 쉽다' 라는 씁쓸한 자각이 뒤늦게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 또한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은 종종 우리의 생에 사고처럼 찾아온다. 임하연 감독의 데뷔작 <그날의 태주>에는 소문에 등 떠밀려 떠난 태주(박한솔)가 만난 이상한 낙원이 있다. 거기에도 물론 소문의 먹구름이 자리하고 있고 순식간에 퍼붓는 악담의 폭우가 있지만 태주를 알아 보는 만혁(김우겸)이라는 낯설지만 친밀한 우산이 있다는 것, 이 영화의 낙관이 만든 낙원의 튼튼한 실체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섹션에 선정되며 월드 프리미어로 첫 공개된 <그날의 태주>는 마음 어딘가를 긁힌 듯이 슬프고 마음의 굳은 살을 뾰족하게 찌르는 생생한 모험담이다. 소문에 의해 '어떤 사람'이 되어 버린 태주가 훌쩍 떠난 남해의 여름, 푸르고 싱싱한 그 공기 속에도 소문과 억측, 단정과 평판은 어김없이 떠돌고 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역병은 이다지도 태연한 모습으로 어디에나 존재한단 말인가. 그런데 남해에서 태주가 만난 만혁도 태주와 다르지 않은 처지다.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집요한 타인의 말들은 마치 영원히 철썩거리는 생명력을 지난 파도 와도 같다. 두 사람을 두고 음탕하다며 음침하게 내뱉거나 삼키는 타인의 말들은 당연히 폭력적이고 더없이 무책임하다. 태주가 분노와 슬픔 쪽의 반응을 보인다면 만혁은 무시하거나 체념하는 쪽을 선택한다. 어느 쪽도 외롭지 않을 리 없다. 남해의 낮과 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무형의 재판장은 시도 때도 없이 열리고 농담이거나 관심, 또는 걱정이라며 퉁칠 채비를 마친 채 도망갈 곳을 마련해 둔 이들의 비겁함이 뭉게구름처럼 넘실댄다. 하지만 <그날의 태주>가 바라보는 방향은 쓸모 없는 타인들의 쪽이 아니다. 영화는 태주와 만혁이 서로를 바라보게 만든다. 잘 알지 못하는 타인과 잘 알고 싶은 내가 우리라는 관계를 맺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거기에는 소문 대신 둘 사이의 소리와 열 수 있는 하나의 문이 있다.



한국독립영화 특유의 리얼리티로 시작한 영화는 이내 태주가 기차 안에서 만난 소설가(예수정)를 등장시키며 예측하지 못한 이야기의 세계로 곧 진입할 것을 안내한다. 부풀려진 말, 쪼그라든 마음, 펼쳐진 풍경과 우연한 만남 사이로 이야기는 더듬이를 여러 번 새롭게 세우며 생명력을 얻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날의 태주>는 성장담과 모험담에 필요한 것들을 살뜰히 챙기고 우연히 맞닥뜨린 모든 삶의 풍경에 충실하게 대답하는 영화다. 말 없이 존재하는 여정의 순간들로 더 오래 기억될.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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