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범의 문연路에서] 임신과 출산 사이 '분만'의 공백
입력 : 2026. 09. 15(화) 03:00
강정범 hl@ihalla.com
섬이라 더 절박한 분만의료
제주형 지원 방안 찾아야

안전한 출산, 지역사회 책임


[한라일보] 지난 5월 제주대학교병원에서 한 산모가 소방헬기에 올랐다. 태어날 아이를 받아줄 신생아중환자실 병상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때로는 이런 현실과 마주하는 일이 되고 있다.

202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응급분만 이송은 모두 346건이다. 이 가운데 34건은 소방헬기를 이용해 도외 의료기관으로 향했다. 이송 사유 절반 가량은 신생아중환자실 부족이었다. 최근 제주 전체 분만의 28%를 담당해 온 산부인과가 27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의료기관 한 곳의 폐원이 제주 전체의 분만 공백 우려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제주 분만의료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저출생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임신을 지원하고, 산후조리와 보육·돌봄을 확대해 왔다. 그러나 그 사이 정작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인 '분만'을 위한 기반은 얼마나 세심히 살펴왔는가?

특히 섬인 제주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절박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인접 도시 병원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바다를 건너야 한다. 분만부터 고위험 산모와 위급한 신생아까지 제주 안에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은 단순한 의료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오는 2027년 제주대병원에 권역모자의료센터가 문을 연다. 산모·태아 집중치료실이 마련되고 현재 16병상인 신생아중환자실도 20병상으로 확충될 예정이다. 산모, 태아, 신생아를 제주 안에서 치료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된다는 점에서 반가운 변화다.

그러나 병상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 그동안 반복된 도외 이송문제가 해소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외 이송의 주요 사유가 신생아중환자실 부족이었던 만큼 추가 확충 이후 수요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지, 필요한 의료인력까지 확보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이제는 출산정책에서 분만을 더 촘촘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산전 진료에서 일반분만과 고위험분만, 응급 이송, 출산 후 신생아 집중치료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의료체계를 갖춰야 한다. 동시에 24시간 분만을 지키고 있는 민간 의료기관의 인력과 운영 부담을 지역필수의료의 문제로 바라보고, 제주에 맞는 지원방안을 찾아야 한다. 타 지역에서는 이미 분만취약지 의료기관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하거나 산부인과가 없는 지역에 순회진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지역의 분만 기반을 지키고 있다.

아이를 낳을 것인지는 한 가족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 이후 안전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책임이다. 저출생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단지 더 많은 출산을 권하는 일이 아니다.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를 품에 안는 순간까지, 제주를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을 만드는 일이다. 새 도정이 지금 답해야 할 질문은 하나다. 헬기가 뜨는 이유를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가?

<강정범 제주도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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