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문화광장] 영웅서사와 우리네 삶
입력 : 2026. 09. 15(화) 02:00
김정호 hl@ihalla.com
[한라일보] 영화의 남녀 주인공을 hero, heroine이라고도 부른다. 세계와 자연에 대한 지식이 무지한 고대로부터 인간은 신화와 민담을 발전시켜 왔다. 이러한 신화와 민담에서 우리는 영웅서사의 공통점을 뽑아냈다. 영화 속 주인공 즉 영웅의 여정은 관객이 같이 하는 일종의 여행이다.

영웅은 우선 보통의 세상 속에서 관객과 만난다. 관객은 영웅의 야망과 한계를 알아가며 그와 동일시하게 된다. 이후 영웅은 탐색의 여행에 오르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하고, 모험으로 향하는 소명을 받는다. 그러나 영웅은 망설임과 공포를 드러내면서 소명을 거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멘토를 만나 경험과 지혜의 도움을 받고 마침내 모험을 받아들여 특별한 세상으로 들어선다. 이러한 과정이 관문의 통과다.

영웅이 맞이하는 특별한 세상에는 영웅을 시험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영웅을 도와주는 자와 방해하는 자가 존재한다. 영웅은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앞길을 방해하는 죽음의 세력과 싸울 준비를 하고, 공포와 맞서 죽음을 맛본다. 이 싸움에서 승리한 영웅은 다시 태어나 공포와 죽음을 극복한 것에 대한 보상을 만끽하게 되고, 모험을 끝낸 뒤 귀환하려 하는 찰나 마지막 도전을 받는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관문에서 피곤하고 지친 영웅의 영혼은 정화되고 속죄와 변신을 겪는다.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시험이다. 시험을 치른 후 마침내 영웅은 귀환해 자신이 속한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성과를 공유하고 자신의 모험을 후세에게 들려준다.

비록 영웅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인생에서도 수시로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이 겪는 과정 중의 하나가 대학입시이며 이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아이들은 부모의 보호에서 벗어나서 자신만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부모들은 자식들의 인생에서 일종의 유예기간인 20대 초반을 보낼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자식들은 방황하며 자아와 세상을 탐색 후 미래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라는 관문은 나중에 보면 인생의 다양한 시련에 비해 작은 것일 수도 있지만, 입시를 겪는 수험생에게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도전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에게는 군대가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전의 연속 속에서 각 단계에서 스승 혹은 조력자를 만난다면 커다란 행운이고, 인생의 멘토를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이러한 여정을 끝마치게 되는 인생의 황혼기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그래도 살만했다고 긍정의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영화에는 반지의 제왕이나 마블 히어로물처럼 영웅서사가 명백한 영화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처럼 영웅, 슈퍼맨, 초인의 등장을 갈망만 한다면, 우리 평범한 필부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우리 각자의 인생이라는 영화, 그 여정에서 우리는 영웅이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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