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배의 하루를 시작하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입력 : 2026. 07. 01(수) 02:00
신순배 hl@ihalla.com
[한라일보] 떠날 때가 됐지. 색색 머리 애젊은 손님 셋을 뒤에 두고 희뜩대는 머리칼로 앉아있는 꼴이라곤. ‘군학일계’ 처지에 이래저래 훈장질을 더 하니 성격 무던한 미용실 원장도 군소리를 낼 수밖에. 전부터 툭툭대는 말투에서 뜻을 읽긴 했다. 장날, 할멈 손 꼭 그러쥔 할아비처럼 익숙한 것에 악착같이 붙어살아 가야 하는 나이임은 알지만, 결국 낡은 것들의 숙명이란 떠나고 사라지는 것이렷다. 큰 인사 떨구고 나오는데 '때를 알고 가는 나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몰라.

수은등 하나 있으면 싶은 좁다란 골목 끝자리. 아랫도리가 녹슨 3색 회전등이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 백반증 심한 문을 여니 백발의 이발사가 시원찮게 몸을 일으키며 "어섭셔."

아귀가 틀어진 옷장과 꼬질꼬질 때 입은 소파. 벽에는 아직도 우횡서를 고집하는 '성사만화가(成事萬和家)' 액자가 세월의 증발을 견디고 있고, 직각으로 사이한 벽에는 희치희치 낡은 괘종시계가 소멸의 운명을 완강히 거부하며 시간을 지휘하고 있다. 세월에 떠밀린 존재들의 버티기가 제법인데 요샛말로는 '존버'라 한다지?

덧옷을 두르고 앉으니 손가락으로 뒷머리를 툭. 그렇지! 이발에도 루틴이 있다. 뒷머리를 치면 고개를 숙이고 옆머리를 치면 반대편으로 기울여야 해. 양쪽 관자놀이를 짚으면 제자리로. 바리캉이 시원찮은 소리로 목덜미를 훑더니 빗과 가위가 이어받는다. 사각사각 소리에 분분히 떨어지는 머리카락. 의자가 젖혀지고 거품 덮인 거뭇거뭇 수염에 넉가래 길을 내는 면도날 금속음이 스릉스릉. 눈이 스르르 감긴다.

선뜻 든 기억 하나. 흰 가운이 무서운 아이는 덧옷에 떨굴까 봐 연신 콧물을 빨았다. 머리도 감지 않고 달음질로 돌아왔더니 뒷머리가 왜 '그따구'냐며 어머니가 냅다 손목을 낚아챈다. 뒤에 눈이 없으니 알 수 없는 노릇. 버텨보지만 평생 물질로 우악스러운 팔 힘에는 도리가 있나. 끌려가며 눈물은 줄줄, 뒤통수를 맞으며 콧물은 눈물 타고 더 질질. 언성 높았던 이발사가 머리를 튕기는데 알리에게 딱밤 100대는 맞는 줄.

돌아오는 길에 걸음은 소 걷듯, 30년 묵은 노래 하나가 저 스스로 입에 올라탄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고맙지. 변두리 이발소든, 허름한 골목 다방이든, 하다못해 구멍 성긴 돌담이라도 장날의 할아비처럼, 우횡서 액자처럼, 괘종시계처럼 제자리에서 버텨주는 존재들. 그래서 끝자락 세월에 내몰린 늙은것들이 제자리에 드는 아름다운 풍경 아니겠나. 비약이 지나친가? 그럼 난 비틀즈로 비틀지. Let it be!

집에 오니 아내의 한마디. "뒷머리를 너무 쳤네." 어른이 됐어도 여전히 알 수는 없어. 대자로 눕든 사지 걸고 버티든 결사 항전의 의지를 품었으나, 천만다행으로 '그따구'까지는 아니었던 모양. 끌려가지는 않았다. 지난 며칠 오락가락 비바람에 뒷머리가 서늘하기는 했지만. <신순배 수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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