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47] 3부 오름-(106)ᄉᆞᆯ오름과 매오름은 ‘ᄆᆞ르오름’
입력 : 2025. 10. 14(화) 03:30
김미림 기자 kimmirim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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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름’이라 했을 뿐인데 ‘쌀오름’이라 해독

쌀오름인가 미오름인가
[한라일보] 미악산 혹은 ᄉᆞᆯ오름, 서귀포시 동홍동 산7번지, 표고 567.5m, 자체 높이 113m이다.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정상 방향으로 바라보면 눈에 들어오는 오름이다. 오름 동쪽 작은 계곡이 정술내(보목천)의 상류가 된다.
이 내는 동홍동과 토평동의 경계가 되고, 보목동 북쪽에서 상효천과 합류하여 보복동 바다로 흐른다. 미악산 서사면에 계곡을 이루면서 만들어진 줄기는 애이리내의 한 지류 된다. 정방천이라고도 하는 이 내는 한라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해안에 이르러 절벽으로 떨어지면서 정방폭포가 된다.
이 오름을 지역에서는 주로 ᄉᆞᆯ오름이라고 부른다. 미악산이라는 지명으로 부르는 경우도 꽤 있다. 역사적으로는 지금부터 316년 전인 1709년 탐라지도에 ‘미악(米岳)’으로 나오는 표기가 가장 이른 기록이다. 이후 줄곧 ‘미악(米岳)’으로 표기하다가 1954년 증보 탐라지라는 문헌에는 ‘미악(米岳)’이라는 표기와 ‘쌀오름’이라는 표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미오름’과 ‘미악(尾岳)’으로 표기하였다. 2005년 1:25,000 지형도에 ‘쌀오름’으로 표기하고 ‘쌀’ 밑에 ‘(솔)’을 적어넣었다. 뜻은 쌀오름인데 실제 발음은 솔오름이라는 취지로 보인다.
기록상 미악(米岳)이 1709년 이래 꾸준히 나타난 점으로 보아 장기간 ‘미오름’이라 불렀을 것이다. 1965년 출판된 ‘제주도’라는 책에도 이 오름의 고지명이 미오름이었음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 책에 한자명은 ‘미악(尾岳)’이라고 했다는 점이 아주 이질적이다.
고대인은 오직 ‘미오름’
오늘날 ‘ᄉᆞᆯ오름’으로 부른다. 그런 점에서 이른 시기에 미악(米岳)이라고 표기한 것은 ‘ᄉᆞᆯ오름’ 즉, ‘쌀오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가? 참고로 ‘ᄉᆞᆯ’은 ‘쌀’의 고어다.
오늘날 ‘ᄉᆞᆯ오름’이라 부르는 연유는 이 오름의 모양이 쌀과 관련이 있다거니 ‘(뼈가 아닌) ᄉᆞᆯ’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제주어 ‘ᄉᆞᆯ’은 ‘살’을 지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홍동역사문화지에는 “ᄉᆞᆯ(살)은 뼈의 반대말이다. 솔오름은 토질 상 바위가 없는 송이로 구성되어 솔오름이라 하며, 미악(米岳)산이라 함은 일제강점기 사람들이 쌀을 쌓아놓은 모양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라는 설명이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 고대인은 왜 보리, 조, 메밀, 콩 등 수많은 곡식 종류 중에서 ‘쌀’과 관련지어 작명했을까? 이 오름이 정녕 쌀을 부어 놓은 모양이라면 어째서 오직 이 오름에서만 지명으로 남은 것일까? 왜 어떤 기록에는 고지명이 ‘미오름’이고, 한자표기는 ‘미악(尾岳)’이라 한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지명해독 상의 오해 때문이다. ‘미악(米岳)’의 ‘미(米)’가 ‘쌀’을 지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자라고 해서 다 뜻글자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본 기획을 통하여 이런 사실은 무수히 보았다. 소리글자로 썼다면 그냥 ‘미오름’이었던 것을 이렇게 썼을 수 있다. 뜻과는 무관하게 음만 빌려 쓰는 방식을 음가자 차자라고 한다.
고대인들은 단순히 ‘미오름’이라고 한 것인데 이걸 기록자가 ‘미악(米岳)’이라고 한 데서 출발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흘러 본래의 지명은 잊어버리고 기록만을 근거로 해독하게 되면 한자의 뜻으로 해독할 것인가 아니면 음으로 해독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이때 전자라면 ‘쌀오름’이되고, 후자라면 ‘미오름’이 된다. 여기서 ‘미’란 순우리말로서 ‘ᄆᆞ르’의 준말이다. ‘ᄆᆞ르’는 ‘ᄆᆞᆯ’로 축약되기도 하고 여기서 ‘ㄹ’이 탈락하면 ‘ᄆᆞ’가 되기도 한다.
‘미’는 ‘ᄆᆞ르’에서 기원
‘ᄆᆞ’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미’, ‘마’, ‘메’, ‘매’, ‘모’, ‘무’, ‘머’ 등 다양하게 실현될 수 있다. ‘미오름’이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모양의 오름’이란 뜻이다. ‘미악(尾岳)’이라고 기록한 입장은 ‘쌀’과 연관시키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사실 이 오름은 꼭대기가 평평하면서 길게 등성마루가 이루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미’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민오름, 믜오름, 믠ᄆᆞ르, 물미오름 등, ‘마’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망동산, 망오름, 망체오름, 망밧동산 등, ‘메’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머체오름, 메지박산, 멩도암오름, 물메오름 등, ‘매’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오름 매ᄆᆞ릇동산, 매오름 등, ‘모’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모구리오름, 모끝산, 모라리오름, 모슬봉, 못지오름 등, ‘무’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무니리오름, 문덕어외, 문도지오름, 문서기오름, ‘뮌오름’ 등을 들 수 있다. ‘머’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머체오름’, ‘머체왓’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ᄆᆞ르’에서 분화한 지명은 다양하다.
표선면 표선리에 매오름이 있다. 표고 136.7m, 자체높이 107m다. 산정부에 큰 바위가 돌출해 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응암산(鷹巖山)으로 표기한 게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이다. 그 이후로 응악(鷹岳), 음암악(鷹岩岳), ᄆᆞㅣ오름, 응봉(鷹峯), 응봉(鷹峯)이라는 표기들이 나타난다. 점차 바위, 암(巖), 암(岩)을 생략하여 응봉(鷹峰), 응악(鷹岳), 매오름 등으로 부르거나 표기했다.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매오름, 응봉(鷹峰)으로 표기했다.
이 지명을 설명하면서 정상의 바위가 매의 머리 같고, 등성이는 날개 같다고 하여 매오름이라 한다는 설명이 퍼져 있다. 그러나 실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모양의 오름이란 뜻이다. 전국에 응봉, 응봉산, 매봉, 매봉산 등 같은 지명이 매우 흔하다. ᄆᆞ르>마루에서 기원한 지명들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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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미악산 혹은 ᄉᆞᆯ오름, 서귀포시 동홍동 산7번지, 표고 567.5m, 자체 높이 113m이다.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정상 방향으로 바라보면 눈에 들어오는 오름이다. 오름 동쪽 작은 계곡이 정술내(보목천)의 상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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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악산(ᄉᆞᆯ오름), 등성마루가 동남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모양이다. 한라산 돈내코탐방로 입구에서 촬영 |
이 오름을 지역에서는 주로 ᄉᆞᆯ오름이라고 부른다. 미악산이라는 지명으로 부르는 경우도 꽤 있다. 역사적으로는 지금부터 316년 전인 1709년 탐라지도에 ‘미악(米岳)’으로 나오는 표기가 가장 이른 기록이다. 이후 줄곧 ‘미악(米岳)’으로 표기하다가 1954년 증보 탐라지라는 문헌에는 ‘미악(米岳)’이라는 표기와 ‘쌀오름’이라는 표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1965년 제주도라는 책에는 ‘미오름’과 ‘미악(尾岳)’으로 표기하였다. 2005년 1:25,000 지형도에 ‘쌀오름’으로 표기하고 ‘쌀’ 밑에 ‘(솔)’을 적어넣었다. 뜻은 쌀오름인데 실제 발음은 솔오름이라는 취지로 보인다.
기록상 미악(米岳)이 1709년 이래 꾸준히 나타난 점으로 보아 장기간 ‘미오름’이라 불렀을 것이다. 1965년 출판된 ‘제주도’라는 책에도 이 오름의 고지명이 미오름이었음을 기록했다. 그런데 그 책에 한자명은 ‘미악(尾岳)’이라고 했다는 점이 아주 이질적이다.
고대인은 오직 ‘미오름’
오늘날 ‘ᄉᆞᆯ오름’으로 부른다. 그런 점에서 이른 시기에 미악(米岳)이라고 표기한 것은 ‘ᄉᆞᆯ오름’ 즉, ‘쌀오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가? 참고로 ‘ᄉᆞᆯ’은 ‘쌀’의 고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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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오름, 주봉을 기준으로 양쪽으로 길게 등성마루를 형성한다. 가시리 중산간도로에서 촬영. 김찬수 |
그렇다면 제주도 고대인은 왜 보리, 조, 메밀, 콩 등 수많은 곡식 종류 중에서 ‘쌀’과 관련지어 작명했을까? 이 오름이 정녕 쌀을 부어 놓은 모양이라면 어째서 오직 이 오름에서만 지명으로 남은 것일까? 왜 어떤 기록에는 고지명이 ‘미오름’이고, 한자표기는 ‘미악(尾岳)’이라 한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지명해독 상의 오해 때문이다. ‘미악(米岳)’의 ‘미(米)’가 ‘쌀’을 지시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한자라고 해서 다 뜻글자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본 기획을 통하여 이런 사실은 무수히 보았다. 소리글자로 썼다면 그냥 ‘미오름’이었던 것을 이렇게 썼을 수 있다. 뜻과는 무관하게 음만 빌려 쓰는 방식을 음가자 차자라고 한다.
고대인들은 단순히 ‘미오름’이라고 한 것인데 이걸 기록자가 ‘미악(米岳)’이라고 한 데서 출발한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흘러 본래의 지명은 잊어버리고 기록만을 근거로 해독하게 되면 한자의 뜻으로 해독할 것인가 아니면 음으로 해독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게 된다. 이때 전자라면 ‘쌀오름’이되고, 후자라면 ‘미오름’이 된다. 여기서 ‘미’란 순우리말로서 ‘ᄆᆞ르’의 준말이다. ‘ᄆᆞ르’는 ‘ᄆᆞᆯ’로 축약되기도 하고 여기서 ‘ㄹ’이 탈락하면 ‘ᄆᆞ’가 되기도 한다.
‘미’는 ‘ᄆᆞ르’에서 기원
‘ᄆᆞ’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미’, ‘마’, ‘메’, ‘매’, ‘모’, ‘무’, ‘머’ 등 다양하게 실현될 수 있다. ‘미오름’이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모양의 오름’이란 뜻이다. ‘미악(尾岳)’이라고 기록한 입장은 ‘쌀’과 연관시키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었을 수 있다. 사실 이 오름은 꼭대기가 평평하면서 길게 등성마루가 이루어진 모양을 하고 있다.
‘미’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민오름, 믜오름, 믠ᄆᆞ르, 물미오름 등, ‘마’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망동산, 망오름, 망체오름, 망밧동산 등, ‘메’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머체오름, 메지박산, 멩도암오름, 물메오름 등, ‘매’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오름 매ᄆᆞ릇동산, 매오름 등, ‘모’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모구리오름, 모끝산, 모라리오름, 모슬봉, 못지오름 등, ‘무’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무니리오름, 문덕어외, 문도지오름, 문서기오름, ‘뮌오름’ 등을 들 수 있다. ‘머’에서 분화한 지명으로 ‘머체오름’, ‘머체왓’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ᄆᆞ르’에서 분화한 지명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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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명을 설명하면서 정상의 바위가 매의 머리 같고, 등성이는 날개 같다고 하여 매오름이라 한다는 설명이 퍼져 있다. 그러나 실은 길게 등성이가 이루어진 모양의 오름이란 뜻이다. 전국에 응봉, 응봉산, 매봉, 매봉산 등 같은 지명이 매우 흔하다. ᄆᆞ르>마루에서 기원한 지명들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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