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만벵디에서의 4·3 추모음악제를 회상하며
입력 : 2014. 10. 02(목) 00:00
'한수풀역사순례길'은 명월포(현 옹포)에서 만벵디4·3묘역까지의 10km에 이르는 여정으로, 올 7월 한림공고 교장재직 시절 사제동행으로 일군 제주 최초의 역사순례길이다.

학생·학부모·지역주민 등과 함께 이 길을 여는 날, 만벵디에서는 4·3영혼들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음악제도 열렸다.

4·3영혼들의 눈물처럼 비가 내리는 묘역에 마련된 천막 공연장 주변에 수백 명의 탐방객은 참배객이 되어 추모음악제에 빠져들고 있었다. 교육기부한 사물놀이패의 신명나는 씻김굿 가락에 한껏 고조된 탐방객들이 관악부의 진혼곡과 4·3영혼들을 위로하는 조시와 '천개의 바람이 되어'세월호 추모곡을 들으며 비장함을 느꼈을 즈음, 슬픔을 승화하려는 듯 제주 출신 가수들이 부른 '질레꽃과 감수광' 등의 신나는 연주가 이어졌다. 감격적인 추모음악제라 여겼을까, 모 유족이 다가와서는 돈 봉투를 내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즉석에서 회원들로부터 모은 돈인 듯했다. 유족회 기금으로 쓰시라며 돌려드렸다. 5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추모음악제가 열렸으니 이젠 조상님들도 위로의 시간을 갖고 있을 거라고도 했다. 그렇게 유족들도 치유의 시간을 맞고 있었나 보다.

기나긴 통곡의 세월동안 일시에 수백의 사람들이 찾아준 적도, 더욱이 추모음악제를 열어준 적도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만벵디 도처에는'하늘 가는 길'처럼 무덤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4·3사건과 관련한 특별한 무덤군이 바로 예비검속 희생자 집단묘역이다.

1950년 8월, 「…예비검속자 총살집행 명령의뢰의건」이란 문서가 전국 경찰서장에게 배달되었다. 제주시 500명, 서귀·성산·모슬포 각각 250명 정도의 숫자가 할당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림과 대정 등지에서 끌려온 사람들에 대한 총살은 수도를 부산으로 옮긴 뒤 이틀만인 1950년 8월 20일 대정읍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행되었다.

시신인도를 갈망했으나 거절당하고 말조차 꺼내지 못하며 살아온 유족들은 1956년 3월에야 비운에 간 조상 46위를 이곳에 안장하였다.

희생자 수는 한림지역 63명, 대정 지역 191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정 지역 희생자들은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묘역에 묻혀있다. 2001년 8월 제주도와 북제주군의 지원으로 만벵디 묘역에도 위령비가 건립,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날 강덕환 시인이 낭송한 조시의 일부이다. '기다림에 지쳐 살과 뼈는 흙으로 돌아가고 / 체온은 햇빛에게 보태어 / 야만의 땅엔 날줄과 씨줄로 곱게 엮은 / 저토록 고운 벌판인데 /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더불어 사는 넉넉함으로 / 평화의 불씨 당겨 점화하오니 / 해원의 향으로 타오르십서 / 상생의 촛농으로 흘러 내리십서'

제주도내 학교에서의 4·3평화교육 활성화를 위한 조례가 작년 3월에 제정되었다.

학생들에게 4·3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평화·인권의 소중함을 인식시키고, 진실 규명의 과정에서 화해를 체득하고 상생의 정신을 함양하여 평화·인권 교육으로 이어짐을 격려하고 조장하기 위함일 것이다.

제주 도처의 역사순례길을 걸으며 학생은 물론 탐방객 모두가 4·3의 아픔을 공유하고 평화와 인권을 되새김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고대한다. <문영택 제주도교육청 교육국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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