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론]설문대할망이 가라주는 설문대 할으방의 전설
입력 : 2013. 11. 07(목) 00:00
"예날 옛적 설문대 시절에 설문대 할으방이 있었다. 할으방의 키는 하늘에 닿았고 몸체는 한라산만큼은 한데 '가운데 놈'은 길고 길어 갈대만큼이나 길었다. 이처럼 키가 크고 몸도 비대한데 '가운데 놈'마저 길어 놓으니 할망을 얻을 수가 없어서 늘 홀애비 신세가 되어 호호 근심걱정이 태산이었다.

하루는 춘 3월 보름이라, 물 땟(썰물시기) 날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설문대 할망이 바다가에 나가 해물을 잡고 있다기에 할으방이 할망을 찾아가고서는, "나는 설문대 할으방인데 저 할망 같으면 각시(마누라)감이 될 만해서 찾아온 것이니 내 청을 들어 주게나" 하는 것이었다. 할망이 한참 생각하다가 과연 할으방 구실 할 것 같아, "정 그러시다면 바닷고기나 실컷 먹여 줄 자신이 있다면야 허락 못할 것도 없지요" 하는 것이었다. "그 까지 것 어렵지 않지" 해서 부부가 되었다.

윤3월 열엿샛날 설문대 할망이 아들 5백 형제를 출산하고 나자 바다고기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그러자 할으방이 할망더러 우리 함께 고기 잡으러 바다로 가자 하여 함께 바다로 내려갔다. 할으방이 할망더러, "내가 저쪽으로 가서 고기떼를 몰아올 터이니 할망이랑 촛마루(表善面 古號)곶의 물속에 들어가 속곳을 벗고 하문을 딱 벌려 앉아 기다리세요." "내가 소섬(牛島) 동쪽으로 가서 바다의 고기떼를 모조리 몰아오는데 기다란 셋놈으로 이 구멍 저 구멍 남김없이 쑤셔대며 몰고 오겠소" 한다.

그러자고 헤어진 후 조금 있더니 아니나 다를까, 큰 고기 작은 고기떼가 몰려오는데 할망의 벌려 앉은 하문으로 모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할망이 고기떼가 다 들어간 것을 확인하자 하문을 꽉 닫아걸고 냇기(城山邑 신풀이의 고호) 下牧場(조선조 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돌담을 이중으로 둘러 이를 중잣성(中築城)·하잣성(下築城)이라 했는데, 지금도 일부 축성터가 남아 있음) 넓은 들판으로 가서 한꺼번에 쏟아 부으니 고기가 10섬 하고도 10말이나 됐다. 설문대 할으방 부부는 그 고기로 한꺼번에 국을 끓여 먹고서는 3300년이나 살았다는 것여."

설문대할망이 무슨 뜻일까. 설문대할으방은 없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제주도에 관한 궁금증 중의 하나다. 설문대할망을 검색하면 많은 자료들을 볼 수가 있지만 설문대할망이 어디서 유래한 말인지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2006년 서귀포문화원간 제주 역사·문화 뿌리학(하)에는 다음처럼 설명돼 있다. 사만두고(沙曼頭姑)란 말이 1842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원진의 탐라지에 처음 나오며, 여기서 사만은 퉁구스어를 비롯한 북방어 saman에서 유래하고 두고는 당시 제주어를 한문으로 쓴 것으로 우두머리 여인이란 뜻이다.

설문대할망은 이 사만두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즉 沙曼頭姑의 사(sa)→s, 만(man)→m, 두(tu)→t, 고(ko)→k 남은 것을 가지고 s→설(雪), m→만(滿), t→대(大), k→고(姑), 설만대고(雪滿大姑)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설문대할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위에 원용한 부분은 무속학자 진성기씨가 1959년 75세의 큰 여자심방, 즉 의미로는 설문대할망이라고 할 수 있는 심방한테서 채록한 것인데, 사만두고가 설문대할망 뿐이 아니라 기타 다양한 이름으로도 변질돼 나타남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제주어의 근원을 풀어가는 과정이 명쾌해 이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면서도 감히 소개한다. <김찬수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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