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알뜨르비행장과 제로센 전투기
입력 : 2010. 10. 26(화) 00:00
가가

일제가 만든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에 제로센 전투기가 내려앉았다. 물론 태평양전쟁 초반 미군기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실제의 제로센(零戰)은 아니다. 철근을 조밀하게 엮어 실물크기로 재연한 설치미술이다. 화가 박경훈씨가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전시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설치해놓은 작품이다.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라 불린 제로센은 태평양전쟁 초반 미군을 압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령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는데 최선봉에 섰던 전투기가 바로 제로센이다. 제로센은 당시로서는 기동력이 뛰어나고 항속거리가 긴 최신예 전투기였다. 일본의 패전이 현실화되는 1945년 초반부터 연합군 함대에 자살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가미카제(神風) 전술용으로도 이용됐다. 제로센은 알뜨르비행장-일본 해군의 제주도항공기지로 오무라해군항공대가 주둔해서 오무라비행장 이라고 불림-에도 배치될 계획이었다. 일명 잠자리비행기라 불린 아카톰보기도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알뜨르비행장에 남아있는 격납고들은 이러한 일본 항공기들을 숨겨놓기 위한 시설물들이다. 1931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알뜨르비행장은 그 면적이 67만평에 이른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는 중국대륙 폭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됐다. 이 곳에서 난징공습은 36회, 연 600기에 이르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면 이 비행장은 결7호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비행장이 된다. 주변에는 대규모 군사기지가 만들어졌다.
알뜨르 평원에 서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격납고가 눈길을 끈다. 원래 격납고는 30기가 넘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19기. 경작지 내에 위치하다보니 중장비를 동원해서 헐어내면서 그 수가 줄었다. 이 전쟁의 잔해는 그동안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무관심속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해온 것이다. 격납고에는 맹목적으로 동원돼 강제동원에 시달려야 했던 제주민의 아픔이 녹아들어 있다.
알뜨르비행장 일대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다크투어의 장소로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행장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들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할까. 매끈하게 정비된 알뜨르비행장 활주로에서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제주도의 운명을 기억해 낼까. 혹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민중의 아픔을 떠올릴까.
알뜨르를 중심으로 한 모슬포 일대는 이처럼 지난 경술국치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꿰는 역사의 창이다.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조명해볼 수 있는 미래의 창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당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조치와 활용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차례다.
<이윤형 사회부장>
오늘날 알뜨르비행장에 남아있는 격납고들은 이러한 일본 항공기들을 숨겨놓기 위한 시설물들이다. 1931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알뜨르비행장은 그 면적이 67만평에 이른다. 1937년 중일전쟁 당시에는 중국대륙 폭격을 위한 전진기지로 이용됐다. 이 곳에서 난징공습은 36회, 연 600기에 이르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면 이 비행장은 결7호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비행장이 된다. 주변에는 대규모 군사기지가 만들어졌다.
알뜨르 평원에 서면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격납고가 눈길을 끈다. 원래 격납고는 30기가 넘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19기. 경작지 내에 위치하다보니 중장비를 동원해서 헐어내면서 그 수가 줄었다. 이 전쟁의 잔해는 그동안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 등으로 인해 무관심속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해온 것이다. 격납고에는 맹목적으로 동원돼 강제동원에 시달려야 했던 제주민의 아픔이 녹아들어 있다.
알뜨르비행장 일대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다크투어의 장소로서 그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행장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들을 보며 무슨 생각들을 할까. 매끈하게 정비된 알뜨르비행장 활주로에서 태평양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제주도의 운명을 기억해 낼까. 혹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민중의 아픔을 떠올릴까.
알뜨르를 중심으로 한 모슬포 일대는 이처럼 지난 경술국치 100년의 역사를 한눈에 꿰는 역사의 창이다.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조명해볼 수 있는 미래의 창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늦기 전에 당국에서도 관심을 갖고 필요한 조치와 활용방안 등을 마련해야 할 차례다.
<이윤형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