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경술국치 100년… 제대로 인식하길
입력 : 2010. 08. 31(화)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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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00년 전 그제(29일)는 국치일(國恥日) 이다. 일본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한 치욕스런 날이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1910년 8월22일, 남산 기슭의 통감관저에선 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에 조인했다. 그들은 조약 체결 후 민심이 두려워 1주일 동안 비밀에 붙였다가 이날 공포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주권은 완전 상실됐다. 그로부터 꼭 100년이 흘렀다. 식민기간 제주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반도의 그 어느 곳도 마찬가지지만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제주는 유ㆍ무형의 막대한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 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침략의 상흔은 제주섬 도처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곳이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대다. 비행장활주로와 격납고시설, 고사포진지, 1km 이상 되는 동굴진지, 해상특공기지 등이 일제의 호전성과 식민지배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이것들은 인류가 경험했던 가장 끔찍했던 전쟁의 하나인 태평양전쟁 관련 세계적 전쟁유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어디 전쟁유적 뿐일까. 일본의 야만성은 문화유적의 파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제주성 멸실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제주성은 탐라국 왕도로서의 상징성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파괴하기 전까지 제주성은 해양성곽도시로서의 자취와 탐라의 역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1926년 산지항을 만들면서 그 성을 헐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제주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야만적 행위다. 제주성이 사라지면서 제주도심은 국적불명의 이미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알뜨르를 비롯한 이런 비극의 현장은 몇 년 전부터 국내외로부터 역사교훈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교사와 일반인, 시민단체 회원 혹은 수학여행단에 이르기까지 계층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제주도나 도의회는 이런 하나의 흐름에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말로는 수출 1조원시대니, 외국인 관광객 200만 유치니 하면서도 이같은 전쟁유적을 역사문화자원으로 재인식하고 교훈을 찾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유적은 상당수가 방치돼 있고, 일제가 허문 제주성은 아직껏 실태파악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결국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의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거나, 교훈을 찾는데 무관심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라도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위해서도 지난 경술국치 100년의 역사적 의미를 헛되지 하지 않게 하는 노력과 역사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름다운 역사만이 아니라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이윤형 사회교육부장>
어디 전쟁유적 뿐일까. 일본의 야만성은 문화유적의 파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제주성 멸실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제주성은 탐라국 왕도로서의 상징성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가 파괴하기 전까지 제주성은 해양성곽도시로서의 자취와 탐라의 역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일제가 1926년 산지항을 만들면서 그 성을 헐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제주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야만적 행위다. 제주성이 사라지면서 제주도심은 국적불명의 이미지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알뜨르를 비롯한 이런 비극의 현장은 몇 년 전부터 국내외로부터 역사교훈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교사와 일반인, 시민단체 회원 혹은 수학여행단에 이르기까지 계층도 다양하다. 그런데도 제주도나 도의회는 이런 하나의 흐름에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말로는 수출 1조원시대니, 외국인 관광객 200만 유치니 하면서도 이같은 전쟁유적을 역사문화자원으로 재인식하고 교훈을 찾기 위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유적은 상당수가 방치돼 있고, 일제가 허문 제주성은 아직껏 실태파악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결국 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의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거나, 교훈을 찾는데 무관심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라도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를 위해서도 지난 경술국치 100년의 역사적 의미를 헛되지 하지 않게 하는 노력과 역사인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름다운 역사만이 아니라 아픈 역사, 부끄러운 역사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이윤형 사회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