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풀은 바람결에 따라 눕는다
입력 : 2010. 05. 17(월) 00:00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이 형벌만 면하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지만,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바로잡게 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고 가르치고 있다. 이 글을 주자(朱子)는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법과 형벌은 정치의 도구이고, 덕과 예는 정치의 근본이다. 따라서 법과 형벌만이 아니라 근본이 되는 덕과 예를 깊이 탐구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스스로 덕과 예를 갖추어야 한다."

정치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 다시 돌아왔다. 권위의식과 사리사욕에 젖은 정치인을 숱하게 경험했던 우리 사회에서 덕(德)은 지도자의 주요 덕목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현실정치에서 이같은 덕목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무리인 듯싶다.

크든 작든 권력이라는 자리는 달콤하다. 때문에 그 자리에는 권력의 맛을 보려는 온갖 부조리의 유혹이 뻗쳐 있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학자 비어드(C.A. Beard)는 '신은 사람을 부패시키기 위해 권력을 안겨 준다'고 했다. 따라서 권력에 오르려는 지도자는 스스로 덕과 예를 갖춤으로써 부조리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번 6·2지방선거로 치러질 제주도지사 선거가 시쳇말로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여당은 아예 후보를 내지 않았고, 야당 후보 1명에 무소속 후보 3명이 출마했다. 이렇게 된 사정이야 대부분 유권자들이 알고 있으니 생략한다. 무소속 후보들은 나름대로 억울해서 직접 도민의 심판을 받고 싶은 마음에 출마를 강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후보와 직·간접으로 연이 닿아 있는 지지자를 제외한 일반 유권자들은 작금의 상황에 부끄러움과 혼란스러움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다.

다시 공자로 돌아간다. 공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법보다 덕을 강조하면서 '윗사람의 덕은 바람(風)이고, 아랫사람의 덕은 풀(草)과 같다'고 했다. 바람이 풀 위로 지나가면, 풀은 그 바람결에 따라 눕게 돼 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윤보석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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