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95] 3부 오름-(154)논고악(논고오름)
입력 : 2026. 11. 03(화) 03:00수정 : 2026. 11. 03(화) 06:35
김찬수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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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고악’이란? 오래된 기록과 오름의 지형에 숨어 있어
‘숲터널’이란 지명의 기원

[한라일보] 이 이름은 과연 어떤 뜻인가. 남원읍 신례리 표고 843m, 자체높이 143m의 오름이다. 516도로 논고교(論古橋) 북쪽 약 1㎞ 지점에 있다. 이곳 부근은 숲터널로 잘 알려져 있는 구간이다. 1997년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에는 행정구역상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와 한남리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오름이라고 기록했다. 2007년 한남리 향토지 '내 고향 한남리'에도 마을의 형태 중 지명 편에 실려있어 한남리인 양 소개돼 있다. 일제가 진지동굴을 팔 때 동원돼서 5일간 일을 한 적이 있다는 주민의 기억을 소개하고 있다. 한남리 주민들은 이와 같이 오랜 세월 이 오름과 연고가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논고악, 남쪽의 동수악 정상에서 촬영한 모습으로 골짜기가 뚜렷하다.
516도로 중 '숲터널'은 도로 양쪽의 나무들이 길 위로 가지를 뻗어, 숲이 터널처럼 보이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성판악 휴게소에서 서귀포 방향으로 약 2.6㎞ 내려간 곳에 있으며, 구간의 길이는 약 1.2㎞ 정도다. 누가 처음 이름을 붙였는지, 언제부터 고유한 장소 이름으로 쓰였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2010년 3월 22일 서울신문 기사에 이미 '숲 터널'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따라서 적어도 그때 이 명칭이 쓰였음을 보여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보다 훨씬 전부터 세간에서 '숲터널'이라는 지명은 사용했다.

이 지명의 공식 사용기록으로는 1994년 3월 제주도의회 '제주도 종합개발계획 동의안 검토보고서'일 것이다. 해당 문구는 보고서의 503쪽에 나오는데 원문은 다음과 같다. '또 한라산 516도로 숲터널 지역구간 양측에 산책로 시설계획은 강우로 인하여 물골로 변할 수 있어 훼손이 더욱 가중될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검토가 요망되는 사항이라고 봄.' 이는 숲터널 양쪽에 산책로를 설치하려는 계획에 대해 빗물이 흐르는 물골이 생겨 자연 훼손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명칭을 새로 정하는 내용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장소를 '숲터널'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구간은 남원읍 한남리에 속한다. 그러나 논고악은 남원읍 신례리 지경이다.



오름의 지명 해독, 특징부터 살펴야

논고악은 정상에 분화구가 뚜렷하다. 이곳에 다양한 화산분출물과 바닥의 식생 그리고 수생식물들도 다수 관찰되는 것으로 봐서 연중 상당 기간 물이 고이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형태는 동쪽으로 열린 말굽형일 것이지만 그렇다고 정상의 분화구가 완전히 터진 형태는 아니다. 동~남쪽에서 보면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으면서 남쪽과 북쪽에 두 개의 높은 봉우리로 되어 있는 형세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넓고 깊은 골짜기 형태다.

사라오름 정상에서 촬영한 논고악, 골이 왼쪽의 동수악 서측을 지나 서중천에 합류한다. 김찬수
오름의 북쪽에는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하천이 흐르는데 이 계곡은 성널오름과 사라오름을 지나 해발 1280m 흙붉은오름에서 발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중천이다. 이 하천은 논고악을 지나 동수교 다리가 있는 곳을 지난다. 논고악 동쪽의 골짜기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숲터널을 지나 동수악의 서측을 끼고 흘러 서중천에 합류한다. 논고악의 서쪽에도 골짜기가 형성돼 있는데 이 하천은 신례천에 합류한다.

논고오름은 어떤 뜻을 담고 있을까? 이 오름은 '논고름' 또는 '논고악'이라고도 부른다. '제주의 오름'에서는 '논고름'을 '논고오름'의 준말로 보면서도, '논고'의 어원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논고악(論古岳)'은 나중에 붙여진 한자 이름으로 보았다. 이러한 설명은 대체로 김종철의 '오름나그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옛 지도와 문헌에는 여러 이름으로 나타난다. 1709년 '탐라지도'와 1872년 '제주삼읍전도', 일제강점기 지도에는 '논고악(論古岳)'으로, 1872년 '정의군지도'에는 '논고리(論古里)'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1899년 '제주군읍지'에는 '와궤악(臥櫃岳)'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1965년 '제주도'에는 한글 이름 '논고악'과 한자 이름 '논고악(論古岳)'이 함께 실려 있다.



오래된 지명 표기일수록 중요

논고악(論古岳), 논고리(論古里), 와궤악(臥櫃岳), 이 표기들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이 오름을 일찍부터 논고오름, 논고롬, 논고름으로 부르고 논고악(論古岳)으로 표기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논고리(論古里)로 부르고 와궤악(臥櫃岳)으로도 표기한 것으로 보아 논궤오름 또는 눈궤오름으로도 불렀다고 했다. 문제는 '논(論)'은 '논'의 음가자 표기로 '누운'의 제주어 '눈'의 변음이며, '고(古)'는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어 '궤'를 '괴'로 인식하고 그 '괴'의 앞부분인 '고'를 음가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이렇게 단정적으로 주장한 것은 와궤악(臥櫃岳)이라는 표기가 등장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논고'라는 표기는 현전하는 문헌만으로도 '와궤(臥櫃)'라는 표기보다 무려 190년이나 빠르다. 물론 발음하거나 듣는 사람에 따라 '논'과 '눈'은 섞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게 이른 시기에 왜 '와(臥)'라고 하지 않았는지 되새겨 볼 일이다. 또한 지금까지 이 오름에 바위굴은커녕 토굴조차 알려진 바 없다.

논고악(論古岳)의 '고'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말은 여러 오름 지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골'에서 기원하는 말일 것이다. '골'에서 'ㄹ'이 탈락한 형태다. '고이오름' 혹은 '고리오름'이라는 지명이 대표적이다. 논고리(論古里)라고 표기한 것은 '논골이' 오름으로서 'ㄹ'이 탈락하기 전 지명의 잔영이다. 이 말은 '오름'이 생략된 말이다. 그럼 '논'은 무슨 말인가? 이 말은 '느르(늘)' 혹은 이의 준말 '는'일 것이다. 충남 논산(論山) 역시 '늘어선 뫼'라는 의미의 '놀뫼'라는 주장이 있다. 전국에 '느르뫼', '늘뫼', '놀미' 등이 많다. 이 오름은 형태로 볼 때 늘어진 오름이다. 와궤악(臥櫃岳)이란 '는오름'의 다른 표기이거나 '누운'으로 인식하여 쓴 표기일 것이다. 논고악이란 늘어지고 골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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