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128)비양도-이종형
입력 : 2026. 05. 26(화) 03:00
황학주 hl@ihalla.com
[한라일보] 하귀에서 애월까지 구비진 길을 지나

하얀 이 드러낸 어부의 웃음이

생선 비늘처럼 활짝 날리는

한림항도 지나

가슴 찔리기 좋은 각도에 멈춰 선 노을 앞에서

그대를 바라본다



만날 수 없어서 더 애틋한

사랑 하나쯤 있어도 좋겠지



평생 그리워만 해도 좋을

그런 섬 하나쯤 남겨두어도 좋겠지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고

끝내 다다르지 못해도 좋은

촉수 낮은 등불이 하나둘 켜질 때까지

지켜보다 그냥 돌아서도 좋은

삽화=배수연


이 시는 제주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 사람의 시다. 그러나 호명된 지명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실제 발을 딛고 걸어온 사람의 몸의 온도가 배어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는 여기서 조용히 빛난다. "생선 비늘처럼 활짝" 열리는 어부의 웃음은 제주의 살냄새 나는 일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건져 올려진 한순간을 시적 언어로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풍경 가운데서 시인은 비양도라 불러도 맞춤한 "그대"를 바라본다. 그리고 닿지 않음을 노래한다. 그리움은 채워야 할 빈자리가 아니라 지켜야 할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지켜보다 그냥 돌아서도 좋은", 이 역설이야말로 이 시의 심장이다. 결핍이 아니라 여백으로서의 그리움. 시인은 노을 뜨는 제주 바닷길, "가슴 찔리기 좋은 각도"에서 그 저며듦을 조용히 반추하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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