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73] 3부 오름-(132)고이악
입력 : 2026. 05. 19(화) 03:00
김찬수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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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와도 관련 없고, '고양이'와도 무관한 '고이악'

골짜기가 빙 둘러쳐진 오름
[한라일보] 단순한 오름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등성마루가 동서로 길게 늘어진 형태로 능선이 완만하고 유려해 보이긴 하다. 화구는 북서쪽으로 열려 전체적으로 말굽형 오름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지형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작은 동산 모양의 언덕들이 산재하고 기복도 심한 편이다. 이런 언덕 사이사이와 오름 주위로 깊은 계곡이 빙 둘러 있는데, 이 계곡은 거의 오름의 반 바퀴를 돌 정도로 길게 돼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2리와 한남리 경계에 있다. 행정구역상 한남리다. 고이악 혹은 고이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의 지형 지질상의 특징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 화산체가 화산쇄설물인 송이(스코리아)로 돼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커다란 바위들로 돼 있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일부 언덕은 화산활동 시 폭발에 의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져 쌓인 송이 언덕이지만 한편으로는 용암이 뿜어져 나와 굳어진 현무암 덩어리들로 된 언덕도 있어 복잡한 지형을 만든 것이다.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서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는 '고이악'을 대표 지명으로 하고, '고이오름', '고리오름', '高伊岳(고이악)', '古利岳(고리악)', '古狸岳(고리악)' 등을 같은 이름으로 표기했다. 이 이름들에 대해 '고양이가 살았었다고 해서, 또는 고양이가 등 구부린 모양이라고 전해 진다'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면서 이 지명의 어원은 '고이오름이 본디 이름이고, 고리오름은 와전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고양이의 옛말인 '괴'는 '고이'에서 변천된 말이며, '고이'는 '괴'와 아울러 고양이의 방언으로서 육지부 몇몇 지방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라면서, 애월읍의 괴오름, 구좌읍의 괴살메 등의 오름 이름에도 이와 관련된 유래가 담겨있다고 친절히 부연했다. 이런 설명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아 이 책에서 처음 쓰인 내용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나 실은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라는 책에 이미 나와 있다.
'고리오름'은 '골이오름'에서 기원
1709년 탐라지도에 고리악(古里岳)을 시작으로 고리봉(古里峯), 고이악(高伊岳) 등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고리악(高利岳), 고리악(高狸岳), 고리악(顧狸岳), 고리악(庫利岳), 고이악(高伊岳), 고이악(古伊岳), 고날악(高捏岳) 등으로도 쓴다고 한다. 고날(高捏)의 '날(捏)'은 이 글자의 발음과 달리 '날 일'의 '일(日)'을 살짝 비틀어 멋을 부린 음가자다. 고전의 표기나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오름은 고리오름 혹은 고이오름으로 불린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리', '고이'는 무슨 뜻인가?
어떤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 '고리오름'을 고이악(髙伊岳)으로 표기하였는데, 이것도 '고리오롬'의 한자 차용 표기라고 단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이악(高伊岳)이라는 표기는 원래 고리악인데 이걸 바로 읽지 못하고 '고이악'으로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4년 이전판 지형도에 고이악(高伊岳)으로 표기함으로써 원래 '고리악'인 것을 '고이악'으로 잘못 읽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고이오름'이 아니라 '고리오롬'이라 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처럼 강력하게 주장은 했으면서 정작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저자는 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고리(古里)와 고이(高伊), 고리(高利), 고리(古狸) 등은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어 '궤'의 음가자 표기로 추정했다. 里(리)와 伊(이)는 이중모음 '궤'의 부음 'ㅣ'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고리'는 맞고 '고이'는 틀린 표기라 해놓고 이제 와서 '고이'의 '이(伊)'도 '궤'의 부음 표기라고 추정한다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나. 그리고 이 오름에 지명에 반영할 만큼 뚜렷한 '궤'가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주장하려면 특별히 '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다 할 '궤'는 없어
'고리'와 '고이'는 고유어다. '고리악'이 되었든 '고이악'이 되었든 한자표기가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음차하기 위해 한자를 사용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다. 이 오름의 지형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골'에 있다. '골'의 어휘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문법으로 정착하기 전 '골'의 쓰임이다. 1447년(세종 29)에 나온 석보상절에는 '고리' 혹은 '고래'로 표기했다. 1461년(세조 7)에 나온 능엄경언해에는 '고래'로 표기했다. 이후에는 점차 오늘날의 표기처럼 '골'이 나타난다.
고리악이란 골짜기가 있는 오름 즉, '골이오름'이란 뜻으로 지어진 지명이다. '고리'는 '골+이'로 'ㄹ' 다음에 모음 'l'가 따라 나오면서 연음화한 것으로 문법적 합성어라기보다는 방언적·구어적 명명 방식이랄 수 있다. '고이악'으로 '리' 대신 '이'로 되는 것은 'ㄹ' 탈락 현상이다. 제주어에서는 'ㄹ' 받침 뒤에 모음이 오면 '리'로 변동되기도 하지만, 아예 'ㄹ'이 소리 나지 않고 탈락하기도 한다. 이 발음은 다시 축약하면서 '고이악'이 '괴악'으로도 바뀌어 마치 제주어 '고양이'로 해석되기도 하는 것이다. 구좌읍 송당리의 '개오름'은 골짜기가 있어서 'ᄀᆞᆯ올'이었던 것이 'ᄀᆞᆯ'에서 'ㄹ'이 탈락하여 'ᄀᆞ올'이 되고, '올'은 '오름'으로 바뀌면서 '가올', '개올', '개오름' 등으로 된 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발음이 천차만별이다. 음운 규칙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다. 변음이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고이악이란 골짜기가 있는 오름이란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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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단순한 오름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등성마루가 동서로 길게 늘어진 형태로 능선이 완만하고 유려해 보이긴 하다. 화구는 북서쪽으로 열려 전체적으로 말굽형 오름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지형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작은 동산 모양의 언덕들이 산재하고 기복도 심한 편이다. 이런 언덕 사이사이와 오름 주위로 깊은 계곡이 빙 둘러 있는데, 이 계곡은 거의 오름의 반 바퀴를 돌 정도로 길게 돼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2리와 한남리 경계에 있다. 행정구역상 한남리다. 고이악 혹은 고이오름이라 부른다.
이 오름의 지형 지질상의 특징은 이것만이 아니다. 대부분 화산체가 화산쇄설물인 송이(스코리아)로 돼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 커다란 바위들로 돼 있는 곳도 있다. 그러므로 일부 언덕은 화산활동 시 폭발에 의해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져 쌓인 송이 언덕이지만 한편으로는 용암이 뿜어져 나와 굳어진 현무암 덩어리들로 된 언덕도 있어 복잡한 지형을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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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악은 외견상 지형이 단순한 오름이다. 남쪽에서 촬영. 김찬수 |
이 오름의 지명에 대해서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란 책에는 '고이악'을 대표 지명으로 하고, '고이오름', '고리오름', '高伊岳(고이악)', '古利岳(고리악)', '古狸岳(고리악)' 등을 같은 이름으로 표기했다. 이 이름들에 대해 '고양이가 살았었다고 해서, 또는 고양이가 등 구부린 모양이라고 전해 진다'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러면서 이 지명의 어원은 '고이오름이 본디 이름이고, 고리오름은 와전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고양이의 옛말인 '괴'는 '고이'에서 변천된 말이며, '고이'는 '괴'와 아울러 고양이의 방언으로서 육지부 몇몇 지방에도 남아 있다고 한다'라면서, 애월읍의 괴오름, 구좌읍의 괴살메 등의 오름 이름에도 이와 관련된 유래가 담겨있다고 친절히 부연했다. 이런 설명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아 이 책에서 처음 쓰인 내용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나 실은 김종철의 '오름나그네'라는 책에 이미 나와 있다.
'고리오름'은 '골이오름'에서 기원
1709년 탐라지도에 고리악(古里岳)을 시작으로 고리봉(古里峯), 고이악(高伊岳) 등으로 표기했다. 지역에서는 고리악(高利岳), 고리악(高狸岳), 고리악(顧狸岳), 고리악(庫利岳), 고이악(高伊岳), 고이악(古伊岳), 고날악(高捏岳) 등으로도 쓴다고 한다. 고날(高捏)의 '날(捏)'은 이 글자의 발음과 달리 '날 일'의 '일(日)'을 살짝 비틀어 멋을 부린 음가자다. 고전의 표기나 지역에서 사용하는 명칭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오름은 고리오름 혹은 고이오름으로 불린다는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고리', '고이'는 무슨 뜻인가?
어떤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 '고리오름'을 고이악(髙伊岳)으로 표기하였는데, 이것도 '고리오롬'의 한자 차용 표기라고 단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이악(高伊岳)이라는 표기는 원래 고리악인데 이걸 바로 읽지 못하고 '고이악'으로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2004년 이전판 지형도에 고이악(高伊岳)으로 표기함으로써 원래 '고리악'인 것을 '고이악'으로 잘못 읽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고이오름'이 아니라 '고리오롬'이라 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처럼 강력하게 주장은 했으면서 정작 그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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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이악은 암괴로 이루어진 언덕과 골짜기가 발달해 있다. 김찬수 |
그리고 이 저자는 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즉, 고리(古里)와 고이(高伊), 고리(高利), 고리(古狸) 등은 바위굴을 뜻하는 제주어 '궤'의 음가자 표기로 추정했다. 里(리)와 伊(이)는 이중모음 '궤'의 부음 'ㅣ'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독자로 하여금 헷갈리게 한다. '고리'는 맞고 '고이'는 틀린 표기라 해놓고 이제 와서 '고이'의 '이(伊)'도 '궤'의 부음 표기라고 추정한다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나. 그리고 이 오름에 지명에 반영할 만큼 뚜렷한 '궤'가 있다는 것인가? 이렇게 주장하려면 특별히 '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다 할 '궤'는 없어
'고리'와 '고이'는 고유어다. '고리악'이 되었든 '고이악'이 되었든 한자표기가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음차하기 위해 한자를 사용했다는 걸 나타내는 것이다. 이 오름의 지형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골'에 있다. '골'의 어휘사를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문법으로 정착하기 전 '골'의 쓰임이다. 1447년(세종 29)에 나온 석보상절에는 '고리' 혹은 '고래'로 표기했다. 1461년(세조 7)에 나온 능엄경언해에는 '고래'로 표기했다. 이후에는 점차 오늘날의 표기처럼 '골'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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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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