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태언의 특별기고]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화 ‘플로깅’
입력 : 2026. 02. 10(화) 00:00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한라일보] 바람이 먼저 길을 내는 섬, 제주 이곳에서는 걷는 일이 곧 풍경을 읽는 일이 된다. 돌담 사이로 스미는 바다 냄새, 귤밭을 스치는 햇살, 오름 능선을 타고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까지. 그런데 요즘, 이 길 위에 작은 변화가 보인다. 허리를 한 번 더 굽히는 사람들. 손에 장갑을 끼고, 봉투를 들고, 한 걸음마다 무언가를 줍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제주를 '완주'하고 있다. 이름하여 플로깅이다.

플로깅은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지만, 제주에서의 플로깅은 조금 다르다. 이 섬에서는 플로깅이 하나의 문화가 된다. 자연을 소비하지 않고,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유명 관광지를 찍고 떠나는 대신, 해안도로의 작은 캔 하나, 오름 입구의 비닐 한 장을 통해 이곳에 '머문 흔적'을 남긴다. 아니, 흔적을 지우며 자신의 발자국을 새긴다.

제주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 돌담길을 걷는 사람들. 예전에는 '얼마나 멀리 갔는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잘 남겼는가'가 중요해졌다. 플로깅을 하는 사람들은 속도를 줄인다. 풍경을 더 오래 본다. 그리고 땅을 더 자주 바라본다. 그 시선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걷기는 관광에서 책임으로, 운동에서 돌봄으로 변한다.

제주의 상징인 오름과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우리가 대하는 태도는 늘 같지 않았다. 플로깅은 거창한 환경운동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하다. 누군가의 '의무'가 아니라, 나의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한 손에 쓰레기를 쥐는 순간, 우리는 이 섬의 손님이 아니라 잠시 맡겨진 관리자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완주'했다고 말한다. 한라산을 오르고, 유명 카페를 돌고, 해변을 찍고, 맛집을 찾아다닌 뒤 돌아간다. 하지만 플로깅을 하는 사람들에게 완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길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연을 덜어내며 간다. 무엇을 더 가져가는 여행이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고 가는 여행. 그것이 이들이 말하는 완주다.

플로깅은 혼자 해도 좋지만, 함께할 때 문화가 된다. 친구와, 가족과, 동료와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경쟁 대신 협력이, 소비 대신 배려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아이들은 왜 쓰레기를 주워야 하는지 묻고, 어른들은 왜 버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길 위에서 세대가 만나고, 가치가 전해진다. 제주에서 플로깅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플로깅은 더 이상 쓰레기 줍는 활동이 아니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되고 있다. 제주에는 이미 그 문화가 자리 잡을 조건이 모두 갖춰져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름이 있고, 올레가 있고, 바다가 있고,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예산이 아니라, 도민과 관광객이 참여하고 싶은 선순환 장치를 지자체의 적극 행정을 마련해야 한다. 도민과 관광객이 걸음걸음은 그 걸음이 쌓이면, 제주의 풍경도, 공동체도,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달라질 것이다. 아마 머지않아 이런 말이 자연스러워질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엔 어디 플로깅 갈까? 아침 산책의 한 장면이고, 주말 러닝의 일부이며, 관광객들은 여행 일정 속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는 아름다운 동행 문화가 될 것이다. <고태언 제주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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